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 더이상 ‘남 일’ 아니다..제조사 입증 책임의 전환 필요

최근 현대차 팰리세이드 급발진 및 에어백 미전개 사건이 논란이 됐다.

A씨는 자동차 사이트에 자신의 작은 아버지(이하 B, 61세)가 당한 급발진 경험담을 올렸다. 이에 따르면 B씨는 올해 1월 팰리세이드(익스클루시브 디젤 2WD)를 구입했고, 지난 6월 18일 폭 2m의 시골 농로에서 급발진 의심 사고를 당했다.

B씨는 “갑자기 RPM이 치솟고 브레이크가 허공을 치는 것 같더니 벽돌같이 딱딱해지더라. 또한 조향이 되지 않았다”며, "급발진 발생으로 옥외 화장실과 편백나무 등을 들이받은 후 농지를 120m 정도 달리며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역시 정상 작동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대로 직진할 경우 가속도가 붙어 전방 축사에 돌진할 것을 우려해 운전자는 최대한 우측으로 운전대를 틀어 야산을 들이받아 차를 멈췄다. 이 상황에서 에어백이 작동하지는 않았다.

사고 조사를 나온 현대차측은 EDR 데이터를 근거로 운전자의 부주의로 발생한 사고라 주장하며 아무런 보상도 할 수 없다고 했다는 게 B씨의 얘기다.

현대차측은 “현재 사고 경위를 확인 중에 있다”고 말했다.

팰리세이드 급발진 의심사고
팰리세이드 급발진 의심사고

▶꾸준히 늘어나는 급발진 의심 사고, 이제 더 이상 ‘남 일’ 아니다

‘남 일’이라고만 생각해왔던 급발진 의심 사고는 이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고가 됐다.

이번 팰리세이드 사고에 앞서 지난 6월 7일에는 기아차 레이의 급발진 의심 사고 동영상이 유튜브에 게재돼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같은 달 13일에는 카렌스2 가스차의 급발진 의심사고, 15일에는 싼타페 차량의 세차장 급발진 의심사고도 발생했다. 6월에만 현대기아차 3건, 청계휴게소 한국GM 스파크 사고 등 모두 4건의 급발진 의심 사례가 나왔다.

지난 2월에도 현대차 G80 3.3 가솔린 차량의 급발진 의심 사고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보는 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하지만 실제 발생하고 있는 급발진 의심 사고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급발진 논란은 미국에서도 진행 중이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올해 1월 테슬라 차량의 급발진 문제에 대해 정식 조사와 리콜을 요구하는 민원을 검토하기로 했다. 테슬라 급발진 관련 민원은 127건 접수됐다. 수동변속기 차량이 많은 유럽에서는 상대적으로 급발진 사고가 적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급발진연구회장을 맡고 있는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학교 이메일로 들어오는 급발진 의심 사고 신고 건은 짧은 것들 포함해서 한해 2000건에 달하는데, 이중 80%는 운전자 실수로 추정되지만, 나머지 400~500건 정도를 급발진 의심사고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G80 급발진 의심사고
현대차 G80 급발진 의심사고

▶제조사는 ‘모르쇠’, 제조사가 결함 입증 증명하게 법 개정해야

운전자 입장에서 급발진 사고가 무서운 이유는 사고 자체로 입는 피해도 그렇지만, 급발진을 운전자가 입증해야 한다는 현행 법 때문이다.

제조사는 신고된 급발진 의심사고에 대해 “급발진으로 볼만한 정황이 나오지 않았다”거나 “운전자가 입증해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2017년 2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국회 안전행정위에 제출한 ‘국과수에 의뢰된 자동차 급발진 사고 관련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 분석을 의뢰받은 급발진 의심 사고 차량은 154건이었지만, 급발진으로 판명된 사고는 1건도 없었다.

때문에 이제는 미국처럼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과 함께 자동차 결함에 대한 입증을 제조사가 증명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김필수 교수는 “급발진 소송의 경우 운전자가 이길 수 있는 확률은 0%다. 급발진 사고가 일어나도 국내외 메이커는 신경조자 쓰지 않는다. 그래서 일명 자동차 관련 대한민국 법을 ‘알아서 져주는 법’이라 비꼬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국의 경우 메이커가 자사 차량에 결함이 없다는 것을 재판과정에서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메이커가 소임을 다하지 않으면 결론이 도출되지 않아도 합의 종용을 해 보상을 받는 경우가 많다. 우리와는 정반대의 내용으로 결론난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좋은 사례가 지난 2014년 일본 도요타 급발진 건이다. 미국 법무부는 그 해 3월 20일 성명을 통해 도요타가 12억 달러(약 1조3000억원)의 벌금을 내는 조건으로 기소유예협정(DPA)에 따라 급발진 관련 수사를 종결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국 정부가 자동차 업체에 부과한 역대 최고액 벌금이다.

유튜브 한문철TV를 운영하고 있는 한문철 변호사 역시 유튜브를 통해 “이젠 급발진 의심사고의 경우 소비자가 자동차 결함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제조사가 자동차에 문제가 없음을 증명해야 하는 입증책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동차 사고기록장치(EDR) 무용론, 급발진 대처방법

자동차 사고기록장치(EDR)는 주 용도가 에어백이 터지는 전개과정을 보기 위해 에어백 ECU에 넣은 소프트웨어이다. 에어백이 터지지 않으면 기록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장치는 메이커의 면죄부로 언급되기도 한다.

운전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브레이크 기록 신호 역시 전자제어 신호인 만큼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많다.

지난 2014년 6월 ‘한국정보통신학회논문지’에는 “제조사에게 문제제기를 하면 운전자의 자동차에 장착된 EDR을 분리해 제조사가 자체적으로 분석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제조사가 마음을 먹으면 언제든지 기록된 사고기록을 조작할 수 있어 사고분석에 대한 신빙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논문이 실렸다고 한 매체가 보도한 바 있다.

따라서 실시간으로 모든 정보가 담기는 OBD2(On Board Diagn osis2ㆍ자가진단장치)를 기록·조회할 수 있는 데이터로거장치(Data Logger)나 EDR에 가속페달 정보를 넣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방안이 추천되고 있다.

하지만 우선은 급발진이 생겼을 경우 대처 방법이 가장 중요하다.

김필수 교수는 "자동차 급발진 시 대처방법으로는 ‘브레이크를 밟을 때 한 번에 깊이 밟기’, ‘변속기어를 중립에 놓고 동력이 바퀴로 전달되는 것을 차단하기’, ‘마지막으로 시동을 끄기’를 해야 한다"며 "실제로 급발진 사고를 겪게 되면 짧은 시간 동안 이뤄지기 때문에 이러한 대처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일 명장은 ‘1.시동켤 때 1단만 켜고, 2,계기판 경고등이 꺼지면 브레이크를 밟고 시동건다. 3. 만약 스마트키 자동차라면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시동을 건다. 4.내비게이션이 켜진후 위치가 잡히면 브레이크를 밟고 시동을 건다’를 추천했다. 그는 “서지 전압(surge voltage·단시간 안에 격렬하게 변화하는 과도한 전압)을 줄이면 50% 급발진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급발진이 발생할 경우 풀브레이킹은 아주 중요한 안전수칙이다. 그리고 가드레일이나 지형지물에 마찰 시켜 차를 정지시키거나, 주차돼 있는 승용차를 정면충돌하는 방법, 충격을 최대한 넓게 완화시킬 수 있는 지형지물에 충돌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단 콘크리트 벽이나 강력한 철제로 이뤄진 지형지물은 충격이 크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

전자신문인터넷 나성률 기자 (nasy23@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