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과학향기]기후를 조작할 수 있을까?

최근 전 세계적인 기후 변화로 변덕스러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수많은 재산 피해를 낳았던 긴 장마, 장마 뒤 폭염, 엄청난 풍속의 태풍까지. 날씨 때문에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사람의 능력으로 기후를 조작할 수는 없을까.

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이 문제에 답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기후란 것은 '일정 지역에서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대기현상의 평균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기상, 날씨와는 다른 개념이라는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순간적인 대기현상은 기상을 뜻한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기후를 조작한다'는 문구는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런 장기적인 대기현상의 변화는 쉽사리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기후변동의 원인으로 꼽히는 것들은 태양에너지의 변동, 지구 자전의 변화, 외부 행성의 움직임으로 인한 변화 등 우리의 과학 수준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다. 때문에 기후를 조작한다는 설정은 순전히 영화적 상상으로 보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기후조작에 대한 음모론은 끊이지 않는다.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 미국에서 진행됐던 'HAARP(HighFrequency Actival Aural Research Program)' 프로젝트다. 수많은 안테나에서 강력한 라디오파를 발사해 대기 상층부의 전리층을 달군다는 개념으로 대기 순환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논리다. 강력한 전파로 사람들을 마인드 컨트롤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라는 주장도 있다.

심지어 경주 대지진조차 HAARP의 영향이라고 말하지만 그 정체는 고주파를 이용해 전리층을 관찰하는 일종의 대형 실험 프로젝트에 지나지 않는다. 그마저 2014년에 공식적으로 폐쇄됐다.

◇국지적 날씨 조작은 가능

물론 기후조작은 불가능해도 기상 상태를 바꾸는 정도는 현재의 기술로도 충분하다. 가장 대표적인 날씨 조절 기술은 구름에 인공적인 영향을 줘 비나 눈을 내리게 하는 인공강우다. 항공기, 로켓 등을 이용해 인공적으로 구름 내부에 요오드화은(AgI) 같은 화학물질을 살포하는 것이다. 이 화학물질은 구름씨(cloud seeding)가 되어 주변의 수증기를 모으고 무거워지면서 비가 되어 떨어진다.

인공강우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단순히 가뭄을 해결하는 것은 기본이고, 미세먼지를 해결하거나 미리 대기 중의 수증기를 소모시켜 태풍의 피해를 약화시키는 등 다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관련 기술도 상당히 발전해 2015년에는 중국 랴오닝성 부근 360㎢에 달하는 넓은 지역에 비를 내리게 한 적도 있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인공강우는 그 효과가 길어야 반나절 수준이라는 문제가 있다. 비용 대비 효율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성공적인 2008 베이징올림픽을 위한 날씨조절에 무려 18조원을 투입했다고 알려져 있다. 살포된 화학물질의 부작용이나 타 지역에 내릴 비(수분)를 끌어다 쓰는 영향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이밖에도 안개제거, 우박제어, 태풍약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날씨를 조종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37개국에서 150여개 이상의 날씨변조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구름에 영향을 주어 인공적으로 비나 눈을 내리게 할 수 있지만, 아직은 그 비용이 비싸고 효과도 길지 않다. 출처: shutterstock
구름에 영향을 주어 인공적으로 비나 눈을 내리게 할 수 있지만, 아직은 그 비용이 비싸고 효과도 길지 않다. 출처: shutterstock

◇진짜 기후조작을 막을 영웅은? 바로 우리!

그런데 사실은 음모론적인 시각이나 국지적 날씨 조작이 아닌 확실하게 인간이 기후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결정적 증거가 있다. 지구온난화다. 어떤 거대한 음모나 악당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조금씩 기후조작에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에서는 몇몇 주인공의 영웅적인 노력으로 재난을 막고 세계의 평화를 되찾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순식간에 사람이 얼어붙고 용암이 폭발하는 영화 속 재난보다 현실에서의 환경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글:김청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