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어머니들의 일터가 사라진다

박준호 벤처유통부 기자
박준호 벤처유통부 기자

대형마트는 지역 주부들이 선호하는 일터다. 근무지가 집과 멀지 않은 데다 비록 정규직은 아니더라도 무기계약직으로 안정된 고용이 보장된다. 기혼 중년 여성의 일자리가 흔치 않은 상황에서 마트는 이들이 지역 경제 일원으로 자리 잡도록 돕는 기회의 장이었다.

그런 대형마트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소비 형태 변화로 업황이 급격히 쇠락했다. 벼랑 끝에 몰린 마트는 생존을 위해 구조조정을 택했다. 이마트는 지난해에만 세 곳을 폐점했고, 홈플러스도 마찬가지다. 롯데마트는 올해에만 16개 매장을 정리한다.

대형마트 폐점은 누군가에겐 생업의 터전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들은 사라진 매장 대신 인근 점포로의 재배치를 약속하지만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집 근처'여서 이곳을 택한 주부 입장에선 현실상 어려운 얘기다.

유통시설은 일자리 창출의 보고다. 대형마트 한 곳이 평균 200명의 지역 고용을 유발한다. 반대로 마트 폐점은 대량 실업을 양산하고 지역 경제에 큰 타격을 준다. 그렇다고 기업만 윽박지를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마트가 있어야 할 필요성을 만들면 된다. 비대면 소비 변화에 맞춰 오프라인 마트를 온라인 배송 거점으로 삼는 방안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큰돈 들여서 물류센터를 지을 필요 없이 점포를 물류 기지로 활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계산, 진열, 안내 등 업무를 맡아 온 주부 직원들은 온라인 시대에도 핵심 인력이 된다. 마트 배송은 고객이 온라인에서 주문한 상품을 대신 장을 보는 '피커'의 역할이 중요하다. 유통기한과 신선도를 직접 확인하며 고품질 상품만 골라 담는 역량은 '주부 경력 9단'의 전문 피커만 할 수 있는 영역이다.

대형마트도 회사 차원에서 피커 인력을 늘리고 있다. 마트의 역할이 변해도 주부 일손은 필요하다. 그럼에도 시대에 뒤처진 규제가 발목을 잡는다. 점포 배송에 대한 의무휴업, 영업시간 규제는 마트들이 점포를 배송 거점으로 활용하는 데 큰 걸림돌이다.

올해 코로나19 한파는 중년 여성에게 유독 혹독했다. 올 상반기 40대 여성 취업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만3000명 줄었다. 50대 여성도 5만명 감소했다. 고용 창출 효자인 유통업체의 살길을 터 줘야 얼어붙은 고용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