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에너지전환과 소명의식

류태웅 산업에너지부 기자.
류태웅 산업에너지부 기자.

“우리나라의 에너지 전환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많이 늦은 편입니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국내 에너지 전환 현황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얘기다. 한 예로 '재생에너지 3020' 정책을 꼽을 수 있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20%까지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언뜻 보면 정부가 에너지 전환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표본을 확대하면 그렇지 않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가릴 것 없이 세계 각국은 우리나라보다 에너지 전환에 적극성을 보인다.

2016년 기준으로 176개국이 재생에너지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개도국 48개국의 고위급 회담인 기후취약성포럼은 오는 2030년부터 2050년까지 20년에 걸쳐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독일은 74개 지방자치단체가 이미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45년까지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법안을 주 상원에서 통과시켰다. 샌프란시스코(미국), 시드니(호주), 말뫼(스웨덴), 후쿠시마(일본) 등은 이 목표 시기를 2040년으로 앞당겼다.

에너지 전환은 산업 생태계도 바꾸고 있다. 그동안 청정에너지와는 무관하던 글로벌 석유사들마저 탈석유·탈가스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세계 2위 석유회사인 영국 BP는 청정에너지로 아예 업(業)을 바꾸기로 했다. 엑슨모빌, 쉘, 토탈, 세브론 등은 전통 에너지 자산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탄소를 배출하면 예전처럼 경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 각국은 탄소 배출 저감을 최우선 기치로 삼고 강제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에너지 전환에 소극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에너지 전환을 둘러싼 내부 갈등을 떼어 놓고 보기 어렵다. 친원전과 탈원전 측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놓고 정치 논리로 맞붙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객관성이 결여된 주장이 난무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도 여러 이해 당사자들에게 휘둘리기 일쑤다.

에너지 전환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우리 후손들에게 '현 상태에서 더 이상 훼손되지 않은' 지구를 물려주기 위한 방안이다. 전 세계의 에너지 전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당장의 이해득실보다는 소명·진취 의식으로 바라봐야 할 때다.

류태웅 기자 bighero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