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시대, 다시 무대에 올려진 연극 '신의 아그네스'

연극 '신의 아그네스' 연습 현장 / 제공 : 예술의전당
연극 '신의 아그네스' 연습 현장 / 제공 : 예술의전당

◇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 올려진 연극 '신의 아그네스'

연극 '신의 아그네스'가 다시 무대에 올려진다고 하였을 때 반가우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무대가 다른 곳도 아닌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이었기 때문에 그러하였다.

1982년 브로드웨이에서 첫선을 보였던 연극 '신의 아그네스'는 펜실베니아 출신의 극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존 필미어(John Pielmeier)의 대표작이다. 당시 미국의 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이던 우리나라에서도 1983년에 초연을 무대에 올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린 작품이기도 하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 연습 현장 / 제공 : 예술의전당
연극 '신의 아그네스' 연습 현장 / 제공 : 예술의전당

뉴욕 브라이튼 지역에 위치한 수녀원에서 실제로 있었던 수녀의 임신과 출산, 영아살해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극으로 만들어졌다는 '신의 아그네스'는 제인 폰다가 주연을 맡아 1985년에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며 1987년에는 국내 개봉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몬트리올 교회의 마리 마드레느 수녀원이라는 배경 아래 아이를 출산한 후 살해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수녀 아그네스와 수녀원의 원장인 미리암 수녀, 사건에 대한 법정 정신과 의사인 닥터 리빙스턴 만이 연극에 등장한다.

앞서 언급했던 걱정이라는 것은 무대에 등장하는 인물이 세 명에 불과한데 토월극장은 너무 큰 무대가 아닐까 싶었던 탓이다. 지금까지도 여러 차례 무대에 올려졌으며 '신의 아그네스' 무대를 거쳐간 많은 여배우들이 톱스타의 반열에 오르는 등 긴 세월 동안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 온 대작임에 틀림없지만 1000여 석의 관람석을 보유한 대극장 무대에 올려진다면 분명 공간이 비어 보일 것이기에 두 눈으로 이번 무대를 꼭 한번 관람하고 싶었다.

◇ '신의 아그네스' 트렌디한 무대로 변화하다

두 눈으로 확인한 '신의 아그네스' 무대에 대해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우려했던 공간에 대한 부분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세 배우의 연기와 적절한 음악이 무대를 가득 채워 상당히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할 수 있겠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 무대 / 제공 : 예술의전당
연극 '신의 아그네스' 무대 / 제공 : 예술의전당

처음 닥터 리빙스턴이 무대에 등장하는 부분에서의 조명은 무대의 깊이가 훨씬 더 깊어 보이게 했고 관람객으로 하여금 그의 등장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는 극의 마지막에서도 동일하게 사용되어 닥터 리빙스턴의 퇴장과 함께 무대 위 열연에 대한 여운을 느끼게 해주었다.

극의 시작을 알리는 닥터 리빙스턴의 목소리가 살짝 작게 느껴진다고 생각된 것은 정말 잠시 미리암 원장 수녀의 등장과 아그네스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무대 위는 진짜 수녀원의 한 공간에 와서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것만 같은 묘한 긴장감을 가지게 하였다.

적당한 위트와 재치가 느껴지는 대사는 신조어까지는 아니지만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의 말투로 적절히 변모해 있었고 객석의 관람객들이 나지막한 웃음소리를 자아낼 만큼 유머러스했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 무대 / 제공 : 예술의전당
연극 '신의 아그네스' 무대 / 제공 : 예술의전당

커다란 무대라 세 배우의 모습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지 않을까 하던 근심도 괜한 것이었다. 닥터 리빙스턴의 트렌치코트와 미리암 원장 수녀의 검은색 베일과 수녀 정복, 아그네스 수녀의 흰색 베일과 정복에 눈길이 갔고 그들의 무대 의상과 주고받는 대사들에 집중하다 보니 무대가 크다는 생각은 더 이상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연습 과정에서 대본에 명시된 음악이 미사의 순서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 음악 감독의 말에 이번 연극의 짜임새를 가톨릭 미사의 과정에 따라 연출한 것도 신의 한 수가 아니었나 싶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 무대 / 제공 : 예술의전당
연극 '신의 아그네스' 무대 / 제공 : 예술의전당

극의 흐름이 있기는 하지만 '신의 아그네스'는 무대의 구성이 크게 달라지거나 하지 않는다. 무대 한쪽에 원형의 탁자와 의자 두 개 그리고 반대편에 조금 멀찍이 떨어져 있는 의자 한 개가 '신의 아그네스' 무대 위 장치의 전부이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표현한 구조물이 천장에서 내려왔다가 사라지기도 하지만 역시나 무대의 모양새 자체를 좌지우지하지는 못한다. 무대 위 공간 속 시간과 날짜가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는 상황에서 극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음악이 연극을 이끄는 견인차와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 요즈음의 우리에게 '신의 아그네스'가 시사하는 것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수녀 아그네스가 임신을 하게 된 대상과 계기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는 물리적인 작용이나 반작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연극이라고는 하지만 극에 내재되어 있는 인간과 종교와 삶에 대한 의문과 성찰은 당대에도 현대에도 그리고 후대에도 계속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일 만큼 시대적 흐름과는 상관없이 계속 회자될 것으로 여겨진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 무대 / 제공 : 예술의전당
연극 '신의 아그네스' 무대 / 제공 : 예술의전당

원작자인 존 필미어 역시 '신의 아그네스'에 대해 인간의 마음과 기적에 관한 연극이며 또한 빛과 그림자에 대한 연극이라 이야기 한 바 있다. 종교에 대한 의문과 번민을 바탕으로 집필했다는 이 연극은 시대에 따라 관람하는 세대들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 추측된다.

그렇다면 작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신의 아그네스'라는 연극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지를 고민하여 볼 필요가 있다. 극을 보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등장인물들의 각기 다름에 대해 공감해 보는 방법도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많은 일상들을 예전과 같이 누리지 못하고 있는 요즘에 직접 극장을 찾아 무대 위 배우들의 연기를 두 눈으로 감상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마음뿐이었다.

과거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접했던 작품이지만 시국이 시국인 만큼 2020년에 접하게 된 '신의 아그네스'는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120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배우들의 연기와 음악에 깊이 빠져들었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 무대 / 제공 : 예술의전당
연극 '신의 아그네스' 무대 / 제공 : 예술의전당

어쩌면 일상이라 생각되었던 관람의 기회가 이제는 흔하게 접하기 어려운 값진 것들이라는 점을 깨닫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처한 상황만큼이나 많은 것들이 절실해진 요즈음 연극 '신의 아그네스'는 현세에 걸맞은 기적을 느끼게 했다.

그것은 관람하는 이의 경험치와 눈높이와 마음의 크기에 따라 매우 작아질 수도 있고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크기라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를 관람하며 미약한 정도의 수준이라도 그러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중요한 시기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전자신문인터넷 K-컬처팀 오세정 기자 (tweet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