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준의 어퍼컷]창업자의 '선한 영향력'

글자 작게 글자 크게 인쇄하기
[강병준의 어퍼컷]창업자의 '선한 영향력'

테크 기업 창업자의 기부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배달의민족'으로 잘 알려진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은 부호 기부단체로 알려진 '더 기빙 플레지'에 참여한 219번째 기부자라는 서약서를 공개했다. 앞서 김범수 카카오 의장도 카카오와 계열사 임직원에게 보낸 신년 메시지에서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내놓겠다고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기부 액수부터 입이 딱 벌어진다. 부자의 체면치레 수준을 넘어섰다. 김 의장이 가입한 더 기빙 플레지는 두 조건을 요구한다. 재산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 보유와 절반 이상의 사회 기부다. 단순 계산해도 최소 5500억원이다. 김 의장은 2019년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에 배민을 40억달러에 매각했다. 주식가치가 뛴다면 기부액도 비례해 커질 것이다. 김범수 의장은 상상조차 힘들다. 김봉진 의장보다 대략 10배가량 액수가 크다. 김 의장 재산은 10조1000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절반을 약속했으니 기부규모만 5조원을 넘는다. 물론 지금 시점이다. 상승세를 이어가는 카카오 주가를 감안하면 정확한 액수는 가늠하기 힘들다.

'어마어마한' 기부액수에 눈길이 가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돈은 기부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기부 배경에 집중할 때 '선한' 의도를 제대로 읽을 수 있다. 인생역전을 이뤘던 이전 창업세대와 달랐다. 먼저 '열린 마음'이다. 김봉진 의장은 기부서약서에서 “부는 개인 능력과 노력을 넘어선 신의 축복과 사회적 운, 수많은 분의 도움이었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공 배경을 개인 능력보다는 환경으로 돌린 것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엄청난 차이다. 성공 이유를 능력으로 보느냐, 환경으로 돌리느냐에 따라 사회를 보는 눈이 다를 수밖에 없다. 본인 힘으로 재산을 축적한 사람에게 기부는 떠밀려 진행하는 수동적 자선행위일 뿐이다. 반면에 능력보다는 환경 때문에 성공했다면 그만큼 주변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부채의식이 항상 있을 것이고 적극적이며 지속적인 사회 환원을 고민할 것이다.

'도전정신'도 주목할 대목이다. 창업자 덕목은 도전과 열정이지만 두 창업자는 더 남달랐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흙수저'로 카카오와 배민이라는 국가대표 기업을 만들기까지 수많은 역경을 이겨냈다. 쉼 없는 도전정신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김범수 의장이 2009년 당시 NHN을 떠나며 임직원에게 보낸 메일에도 잘 나타나 있다. 김 의장은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는 삶을 걸어 왔기에 '부의 대물림'을 거부하고 흔쾌히 재산을 쾌척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임감'이다. 미래를 위한 투자에 적극 나서겠다는 분명한 기부 목표를 제시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현안을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겠다는 의지에서 기부를 결정했다는 이야기다. 갈등과 부조리, 불평등 등 최근 제기되는 여러 사회문제 해결에 방점을 찍었다. 단순하게 재산을 사회에 헌납하겠다는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김봉진 의장은 교육 불평등 해결에 집중하겠다고, 김범수 의장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고민하겠다고 선언했다.

지금 세대는 누구나 후대에 빚을 지고 있다. 사회문제 해결은 지위고하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사회지도층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솔선수범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선한 영향력'을 위한 방아쇠면 족하다. 두 창업자가 달리 보이는 이유다.

취재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