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종합반도체 강국' 비전 실현할 사람이 없다

연간 전문인력 5000명 배출해야
2030 종합 반도체 강국 실현 가능
1년 과정 반도체 아카데미 만들고
교수 충원·연구비 지원 정책 시급

[이슈분석] '종합반도체 강국' 비전 실현할 사람이 없다

#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위상을 굳건히 하고, 시스템 반도체까지 세계 최고가 되어 '2030년 종합 반도체 강국'의 목표를 반드시 이뤄내겠습니다.”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이 경기도 삼성전자 평택단지 3라인(P3) 건설현장에서 열린 'K-반도체 전략 보고'에서 이같이 선언했다. 메모리 시장에서 세계를 호령하는 대한민국 반도체 역량을 비메모리인 시스템반도체까지 확장하겠다는 포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세계 D램 메모리 시장 점유율은 70%가 넘는다. 과점 형태다.

그러나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우리 위상은 미약하다. 매출액 기준 삼성전자 점유율이 2.2%에 불과하다.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에 비해 시스템반도체는 체질이 허약하다. 정부는 이를 고쳐 세워 메모리에 못지않은 시스템반도체 역량을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모든 산업이 그렇듯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핵심도 결국 '사람'이다. 시스템반도체 업계에서는 만년 인력 부족에 허덕인다. 최근 불거진 문제도 아니다. 십수년째 같은 말이 오간다. “당장 쓸 사람도 구하기 힘든데, 2030년 시스템반도체 세계 최고는 어불성설”이라는 한탄이 나온다. 종합 반도체 강국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인재 육성 방안을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시스템반도체 업계 “장기적으로 연간 5000명 인력 필요”

60여개 이상의 팹리스(칩 설계)·IP(설계자산)·반도체 디자인 솔루션 회사가 모여 시스템반도체 업계를 대변하기 위해 구성된 '한국시스템반도체포럼'은 국내 시스템반도체 업계에 긴급히 필요한 인력이 연간 500여명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당장 시급한 인력이고 단기적인 수요다. 또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 올리려면 연간 5000여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왕성호 한국시스템반도체포럼 대외협력위원장은 “시스템반도체 역량의 핵심인 설계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면서 “소수의 팹리스를 제외하면 100여명도 안 되는 인력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 기업의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시스템반도체에 한정된 수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진행한 '2020 반도체산업인력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반도체 전체 산업 인력 부족은 연간 1500명 수준이다. 박사 71명, 석사 127명, 학사 949명, 고졸 206명 등이 반도체 업계에 필요한 인력으로 조사됐다. 종합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인재 양성이 시급하다는 걸 방증한다.

시스템반도체 생태계에서 설계(팹리스)와 생산을 담당하는 파운드리 사이의 가교 역할을 담당하는 디자인하우스도 열악하긴 마찬가지다. 최근 에이디테크놀로지와 세미파이브 등이 인수합병(M&A)으로 사세를 키우고 있지만, 첨단 미세 공정 디자인 설계와 최적화를 위해서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점에 여전히 공감한다.

에이디테크놀로지 관계자는 “10나노 이하 공정 설계에 들어갈 때는 많게는 100여명 이상 인력이 투입되기도 한다”면서 “현재 이러한 첨단 공정 디자인을 감당할 수 있는 디자인하우스는 극히 소수”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5나노 공정 디자인 설계 비용은 28나노 공정의 10배가 넘는다. 이는 해당 공정에 필요한 인력 수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다. 일부 디자인 하우스는 국내에서 인재 확보가 어려워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 연구개발(R&D) 거점을 마련, 설계 인력을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에서도 인력 확보는 고민이다. 특히 첨단 미세 공정 설계 등은 석·박사급 전문 인력도 상당수 필요하다. 대학에서 갓 졸업한 학사 인재도 기업 내부에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양성할 수 있지만, 시간과 비용 투입이 만만치 않다.

서울의 한 반도체 관련 학과 교수는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에는 지원하는 사람이 많은 반면, 기업이 원하는 양질의 전문 인력 확보는 여전히 묘연한 상황”이라면서 “대학에서 배출한 인력과 산업 현장에서 요구하는 인력의 부정합(미스매칭)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긴급한 인력 수혈 가능한 교육 기관 필요…대학에서 양질 인재 양성 시급

시스템반도체 업계에서는 우선 아카데미 형식이라도 반도체 전문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기관을 시급히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왕 위원장은 “반도체 전문 아카데미 1년 과정을 신설해 비전공자를 포함, 다양한 반도체 인재를 양성할 기관이 필요하다”면서 “융합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장점뿐 아니라 양질 일자리 확대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장기적으로 대학에서 능력 있는 반도체 전공자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는 교육 시스템 개선이 선행돼야 풀 수 있는 문제다.

황철성 서울대 석좌교수는 “수도권 대학 정원 제한 문제와 교수 부족 등 반도체 인재 양성을 위한 여러 걸림돌이 있다”면서 “이런 부분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와 제도 개선 없이 반도체 인력 양성과 종합 반도체 강국 도약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스템반도체 업계에서도 대학 학부 내 시스템반도체 학과 신설과 확대를 요구한다. 2030년 종합 반도체 강국 실현을 위해 연 5000명 수준 반도체 학과 졸업생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시스템반도체 관련 교수 충원과 자율 과제 연구비 지원을 통해 교육 환경도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교육 환경이 탄탄해야 전문 인력도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갖출 수 있다. 능력 있는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이 조성돼야 시스템반도체 업계에서도 석·박사급 전문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

허염 실리콘마이터스 회장은 “반도체 인재 양성에 관해 대학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기업이 인력을 키우는 측면도 있지만 기본 인재 양성은 대학에서 이뤄지는 만큼 많은 인재가 대학에서 여러 과제를 수행하며 산업 역량을 쌓는 것도 필요하다. 반도체 설계 분야에선 특히 석사급 인력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