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디스플레이업체들이 중국투자를 본격화하고 있는 것은 올 1분기를 중심으로 실적호조와 내년 시장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잇따르고 있는 데 힘입은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동안 꺼려왔던 반도체·LCD 등 하이테크산업에 대한 투자가 중국으로 몰리는 것은 중국이 낮은 인건비를 무기로 한 생산기지에서 IT 및 전자산업의 최대 공급기지로 성장할 가능성이 서서히 현실화돼 나타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실제로 지난해말 WTO 가입 이후 그간 묶어놨던 현지 마케팅법인 설립을 허용한 한편 지난 2월에는 반도체에 부과한 6%의 수입관세를 2년 이상 앞당겨 철폐해 반도체·디스플레이업체에 대한 직수출 문호를 개방하고 밀수철폐 및 정품유통 지원에 나서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대만 정부가 반도체수탁생산(파운드리) 전문업체 TSMC를 필두로 자국내 반도체업체들의 중국진출을 허용하는 등 중국 IT시장의 변화에 대한 기대와 긴장감이 타 경쟁사들을 자극하고 있는 것도 요인으로 분석된다.
◇떠오르는 중국=현재 중국에는 중국정부가 출자한 SMIC와 일본 NEC와의 합작사 화훙NEC 등이 최신 8인치 웨이퍼 가공공장을 가동중이다. 아날로그 부품을 생산중인 4, 5인치 공장도 20여개에 이른다. 2005년까지는 베이징 및 상하이에 20개의 팹이 들어설 예정이다.
중국정부는 해외 유수기업을 대상으로 합자공장 설립을 유도, 오는 2010년까지 베이징에만 총 20여개의 최신 팹을 추가로 유치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이를 위해 베이징∼상하이∼선전으로 이어지는 ‘하이테크밸리’를 중심으로 첨단산업을 집중 육성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거대 소비시장과 탄탄한 산업기반시설로 중국 하이테크산업의 요람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하이에는 중국기업뿐 아니라 현지 진출한 세계 각국의 내로라하는 하이테크기업들이 속속 둥지를 틀고 있다.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 국내 반도체·LCD업체들이 상하이를 타깃으로 중국진출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반도체협회에 따르면 현재 상하이에만 연구, 설계, 제조, 패키징, 시험, 재료 등 반도체 관련기업은 이미 100개를 넘어섰다. 이들 기업의 총 투자액만도 52억9000만달러에 달할 정도. 현재 추진중인 프로젝트만도 상하이화훙NEC의 설비증설을 비롯해 16억달러에 달하는 신규 투자를 추진중인 상하이광력 등 대형 투자가 줄을 잇고 있다.
◇가시권에 접어든 거대시장=12억 인구의 중국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하는 세계 최대의 시장이다. 아직 중국 특유의 사회적·문화적 장벽으로 인해 시장접근이 말처럼 쉽지 않지만 WTO 가입과 중국정부의 적극적인 첨단산업 육성 전략 및 수요진작 정책에 힘입어 이제 거대시장의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더욱이 중국은 마치 세계경기 사이클을 비웃기라도 하듯 세계적인 IT경기 부진에도 불구, 수년째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으며 이같은 성장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반도체·LCD 등 첨단기술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쏠리고 있어 중국 IT시장은 이제 눈앞에서 열리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세계 하이테크기업들의 중국진출은 기존의 현지 마케팅법인 중심에서 ‘현지생산-현지공급’이란 철저한 현지화로 정책이 바뀌는 추세다.
백색가전 조립 및 생산 등 기존에 인건비 절감을 위해 중국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치중했던 국내업체들의 중국진출이 중국 심장부쪽으로, 그것도 하이테크분야로 중심이 이동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와관련, 커크 폰드 페어차일드 회장은 “아날로그 부품 및 반도체를 생산하는 업체에는 향후 10년내 중국이 가장 큰 시장이 될 것”이라면서 “누가 먼저 중국에 진출, 현지화에 성공하느냐가 앞으로 국제경쟁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그래도 갈길은 멀다=그러나 일각에서는 아직도 중국시장이 불안하다고 말한다. 하워드 하이 인텔 대변인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시장은 매력이 있지만 아직은 최신공정이 들어가기에는 안팎으로 어려움이 있다”면서 “구체적으로 팹 설립시기를 잡는 데 고심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TI의 관계자도 “베이징 등지에 판매관련 현지사무소를 설립해 운영중이지만 아직 팹 설립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중국시장은 매력적이지만 투자시기는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LCD 등이 자동화를 통해 거의 무인화가 이루어진 장치업종이란 점에서 굳이 중국에서 생산, 공급할 메리트가 적고 이들 업종이 통상적으로 투자규모가 수십억달러에 달한다는 점에서 리스크 요인이 많다는 점도 부정론의 근거로 제기되고 있다. 이와관련, LCD업계의 한 관계자는 “LCD업계가 중국에 진출한다고 해도 당분간은 조립라인이나 후공정 중심으로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IT업체들의 중국진출이 하이테크 쪽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은 새로운 각도로 바라봐야 한다는 시각이 더 우세하다. 반도체·LCD 등 이미 세계 1위 자리를 굳히고 있는 아이템을 고도화하기 위해선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시장을 결코 좌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완벽한 글로벌경영의 실현은 현지화이며 이런 점에서 현지생산-현지공급체계 구축은 바람직한 현상”이라며 “하이테크형 장치업종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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