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부터 골목길에서 진귀한 풍경이 사람들 눈에 목격되기 시작했다. 살구빛 전동차에 야쿠르트 아주머니가 올라타 자전거 핸들처럼 생긴 손잡이를 잡고 골목골목을 누비고 있는 모습이다.
매일 아침 야쿠르트 수레를 끌고 동네 주민을 맞던 아주머니가 이젠 최첨단 기계 위에 올라타 야쿠르트 배달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이 프로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누구나 한 번쯤 야쿠르트 탑승형 전동카트가 지나가면 고개까지 돌려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도 한번 타보고 싶다’는 호기심까지 들게 했다.
한국 야쿠르트의 창사 이래 최대 프로젝트로 평가받는 ‘야쿠르트 탑승형 전동카트’ 안에는 보이는 것 이상의 철학과 신념이 담겨있었다. 4개의 주요 중소업체가 모여 설계를 하고 완성품을 만들기까지 지새운 밤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전 세계 유래 없는 이동식 냉장고가 장착된 ‘탑승형 전동카트’를 만든 5개 회사 합작 팀인 ‘지독한 녀석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야쿠르트 창사 이래 최대 프로젝트…“냉장고가 장착된 전동 카트를 만들어보자는 황당한 제안이 현실화”
지난 2012년 한국야쿠르트는 자사 이미지를 보다 젊게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고안해내기 위해 사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숱한 회의 끝에 ‘야쿠르트 여사님(한국야쿠르트 내에서는 야쿠르트 배달원을 ‘여사님’으로 통칭) 일을 누구나 하고 싶게 만들도록 ‘올드한 이미지’를 개선해 보자’는 결론이 나왔다.
힘들게 수레를 끌고 먼 곳까지 직접 걸어 야쿠르트 제품을 배달하는 여사님 업무가 일반인에게 ‘힘겹고 고된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마련이다. 실제로 하루 평균 6.8시간을 일하는 여사님은 종종 애로와 고충을 표했다.
탑승형 전동카트 탄생은 이 두 가지를 해소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첫 번째는 여사님이 보다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과 한국야쿠르트가 젊은 이미지를 갖자는 것이다.
구성된 경영 개선 태스크포스(TF)에서는 두 가지 고민을 해결해야 한다는 목표를 두고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관련 제조업체를 찾기 시작했다.
일단 야쿠르트 같은 유제품을 10시간 이상 신선한 상태로 보관할 수 있는 냉장고가 필요했고 이를 운반할 수 있는 카트와 이동성을 위한 배터리 업체 등을 수소문했다. 최종적으로 함께하게 된 기업은 전기카트 개발 공급업체인 대창모터스와 티에스, 냉장전문회사 오텍캐리어와 카이스전자주식회사 등이다.
기술적인 고려 없이 ‘여사님이 편하게 일할 수 있고 한국야쿠르트 이미지를 젊게 개선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들어 달라는 한국 야쿠르트의 황당한 제안을 받고 다들 갸우뚱했다. 하지만 결국 1년여 간의 오랜 개발과 실험 끝에 완성품을 탄생시켰다.
배터리를 이용해 10시간 이상 냉장고를 가동하고 경사가 높은 곳까지 운반할 수 있는 카트 안에 장착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누구도 시도해 보지 않은 일이었다. 냉장고 업체, 배터리 업체, 카트 업체가 머리를 꽁꽁 싸매고 아이디어를 고안해내야 했다.
중소 개발 업체는 끝없는 회의를 가졌다. 의견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설계상 냉장 기기 무게가 증가하면 배터리 업체와 전동차 업체가 반발할 수밖에 없고, 전동차의 기능을 고양시키면 배터리가 빨리 닳아 장기간 운행이 불가능해지는 식이다.
김수훈 티에스 대표이사는 “각 업체가 같은 목적을 갖고 한배에 올라탔기 때문에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은 양보하고 함께 기술개발을 할 수 있는 부분에도 힘을 썼다”며 “표준 설정이나 기준 선정에는 한국야쿠르트 측 중재 역할도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야쿠르트는 2017년까지 1만대 보급 기준으로 관리비 포함해 약 900억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올해 말까지 누적 기기 보급대수 목표는 3830대로 구체적으로 설정했다. 이는 전체 여사님 수의 30% 정도다. 탑승형 전통카트를 배정받는 여사님은 해당 지점 카트 보관 공간 여력이나 여사님 면허, 지원, 해당 지역 지형 특징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한다.
탑승형 전동카트는 젊은 층이 많이 공유하는 유명 웹툰에 등장할 정도로 사회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만큼 획기적이었고 혁신적인 도전이었다. 여사님의 노동의 질을 고양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국야쿠르트에 보다 젊은 이미지를 제공하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야쿠르트 탑승형 전동카트…300개가 넘는 중소기업이 함께 만든 ‘상생의 상징’
탑승형 전동카트 개발에 직접 참여해 설계, 제작까지 참여한 대표 4개 업체를 제외하고도 한 기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협력업체가 필요하다. 탑승형 전동카트 속에 들어간 부품 수만 헤아려 봐도 얼마나 많은 업체와 관련 산업이 함께 힘을 모았을지 짐작이 간다. 탑승형 전동카트는 한국야쿠르트라는 대기업 아이디어를 두고 기술력 높은 토종 업체들이 합심해서 작품을 완성한 한편의 명작이다.
제작에 참여한 중소업체 관계자들은 이번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자사에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던 좋은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양연호 오텍캐리어냉장 이사는 “가정용 AC전원이 아닌 배터리를 이용하는 이동식 전원 공급을 기반으로 한 냉장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은 자사 입장에서도 첫 시도였다”며 “성공적으로 탑승형 전동카트를 내놓게 됐는데 이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한국 야쿠르트 개발 지원비를 기반으로 새로운 기술적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값진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홍성은 카이스전자 연구소장도 “배터리를 최소한으로 소모하면서도 냉장 온도를 오랜 시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시도는 큰 도전거리였지만 그만큼 이를 완수하면서 자사 기술력이 한층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한국야쿠르트 프로젝트로 매출도 20% 이상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영태 대창모터스 이사는 “탑승형 전동카트를 납품하면서 매출 기여도가 40% 이상 늘었다”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또 다른 전통카트 프로젝트를 수주 받는 등의 파생효과도 컸다”고 덧붙였다.
한국야쿠르트라는 대기업이 중소업체에게 지시해 ‘이런 기기를 뚝딱 만들어 와라’라는 일방적인 제안이 아니었다. 회의와 협의를 거듭하며 서로의 편의를 위해 배려하는 문화가 돋보였다. 중소업체와 대기업이 함께 하나의 목표를 이루겠다는 절박하고 간절한 ‘마라톤 레이스’였다.
어떤 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도움을 주면 제작업체 형편이 나아질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한 한국야쿠르트 경영진 입김이 작용했다. 백지와도 같았던 프로젝트 청사진이 현실화될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상생의 문화’가 큰 몫을 했다는 게 참여 중소업체 설명이다.
◇결국 기술의 가치는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
3000대 이상의 탑승형 전동카트가 전국에 보급됐다. 대부분의 사람이 한번쯤 길거리에서 탑승형 전동카트를 목격해봤을 것이다.
기기를 처음 발견했을 때의 생경함과 기이함이 사라진 후엔 무언의 따뜻함과 안도감을 느낀다. 항상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맞는 ‘어머니와 같은’ 야쿠르트 여사님의 힘겨웠던 노동 고충을 해결한 탑승형 전동카트 덕분에 느끼는 고마움이다.
이영태 대창모터스 이사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야쿠르트 배달 업무를 하는 사람들의 삶을 보다 깊게 생각할 수 있었다”며 “항상 가깝고 정겹게 느껴지는 야쿠르트 배달사원들이 편하게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흐뭇함과 따뜻함을 느끼게 되는 정서적 효과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동카트 등장으로 삶의 모습이 바뀐 여사님이 많다. 다리가 성치 않아 일을 그만두려 했던 한 여사님은 전동카트를 이용하면서 계속해서 일을 이어갈 수 있었다. 상당수 여사님이 전동카트 이용 후 더 먼 곳까지 갈 수 있게 되면서 고객이 늘고 수입이 눈에 띄게 늘었다.
한국야쿠르트가 탑승형 전동카트를 개발하게 된 시작점이 바로 ‘사람에 대한 관심’에 있었다는 게 엿보이는 대목이다. 전국 1만3000여명의 여사님 삶이 보다 편안해지고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자는 바람이 현실화된 것이다.
매출 성장은 그 다음 이야기다. 탑승형 전동카트로 이동성이 수월해진 덕분에 더 많은 고객에게 더욱 신선한 유제품을 배달할 수 있다는 점이 장기적 매출 신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그림이다.
탑승형 전동카트는 더욱 편리하고 실용성 있는 기능을 갖춰 계속해서 진화할 예정이다. 현재 제한 속도인 8Km를 넘어 보다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도록 하거나 여사님이 직접 앉아서 운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전기자동차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즐거운 고심을 하고 있다.
홍성은 카이스전자 연구소장은 “기기를 타고 있는 여사님들을 볼 때마다 항상 흐뭇해지고 많은 업체가 합심해 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성공적으로 이뤄냈다는 데에 큰 자부심이 있다”며 “앞으로도 야쿠르트 여사님에게 보다 편리한 기기를 제공할 수 있도록 모든 업체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기술 업그레이드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야쿠르트 탑승형 전동카트 개발 실무자 김승영 한국야쿠르트 영업전략팀 과장
“마라톤에 비유하자면 지금은 ‘준비, 땅’한 시점이라고 봅니다. 이제부터 많은 여사님과 고객 목소리에 귀 기울여 탑승형 전동카트가 얼마나 더 많은 사람에게 행복함을 안겨줄 수 있을지를 계속해서 고민해 나갈 것입니다”
지난 12월 첫 탑승형 전동카트 출시 이후 약 3000대 이상 카트를 보급해 많은 사람의 호응을 얻었지만 한국야쿠르트는 이제 시작이라는 초심이다. 창사 이래 최대 프로젝트라고 평가받는 탑승형 전동카트를 내놓으며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던 계획을 현실화했을 때까지 쏟았던 열정의 크기만큼 향후 새로운 도전을 끊이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탑승형 전동카트 개발 실무진이었던 김승영 한국야쿠르트 과장은 “많은 중소업체가 시제품을 만들어 시연하고 테스트를 할 때도 평가자의 절대 다수는 여사님으로 구성됐었다”며 “의사결정권을 가진 경영진보다도 실제로 카트를 타고 일을 하는 여사님 편의와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는데 주안점을 두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야쿠르트 아줌마’와 ‘스마트’라는 단어는 어떻게 보면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로 들리지만 이제 야쿠르트 탑승형 전동카트가 탄생한 후 많은 사람이 야쿠르트 여사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며 “우스갯소리로 야쿠르트 로봇이 이제 나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데 그만큼 향후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편의를 제공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기기를 업그레이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