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유럽특허청이 발표한 '특허 출원 세계 100대 기업'에 우리나라 기업으로는 삼성전자, LG전자, LS산전만 포함됐다. 지난해 말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그룹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세계 100대 브랜드'에도 삼성전자, 현대·기아자동차만이 순위에 올랐다. 우리 스스로 세계적 정보기술(IT) 강국이라 여겨 온 시간을 되돌아볼 때 참으로 초라한 실적이다.
국내에서는 무소불위의 재벌 또는 대기업이라 불려도 글로벌 시장에서는 대기업다운 경쟁력을 갖춘 회사가 드물다. 국내에서 IT 공룡이라 불리는 네이버, 카카오도 글로벌 시장에서는 존재감이 미미하다.
최근 우리나라 경제 기조는 대기업 중심에서 벗어나 혁신 벤처기업을 통한 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대기업 성장을 이야기하면 친 재벌 발상으로 치부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세계 시장 경쟁력을 고려하면 우리 대기업은 한참 더 성장해야 할 상황이다. 대기업이 진정한 대기업다운 모습으로 성장해야 한다. 과거와 같은 내부 핵심 역량에 의존한 선단식 외형 성장 방식으로는 더 이상 국가 경제 발전과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은 시점에서는 혁신적이고 민첩한 벤처기업과 연계한 동반 성장만이 의미 있다. 이러한 오픈이노베이션에는 사내 벤처캐피털(CVC)이 큰 역할을 한다.
필자는 10년 전 모 대기업 CVC 펀드를 운영한 경험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CVC 성과를 다룬 체계적 연구를 시도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여전히 통계 결과 도출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실질적 CVC 활동이 미미하다.
그 사이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CVC 활동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크게 증가했다. 벤처투자 조사기관인 CB인사이트에 따르면 미국 내 전체 VC 투자에서 차지하는 CVC의 비중이 1995년 7.4%에서 2014년 18%로 증가했다. LG경제연구소 2015년 리포트에 따르면 다우존스 구성 기업 80% 이상이 CVC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서울과 미국 실리콘밸리에 별도 조직을 두고 오랜 기간 CVC를 운영하고 있는 삼성을 제외하고는 전문으로 운영하는 기업이 드물다. 삼성 CVC도 주로 해외 기업에만 집중하고 국내 벤처기업은 무시한다는 비판 시각도 존재한다.
실제 많은 우리 대기업이 겉으로는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이라 내세우지만 여전히 대기업 내에는 NIH(Not Invented Here) 신드롬이라고 하는 내부 인력 우월주위와 혁신 추구를 향한 구성원들의 두려움 및 피로감이 팽배하다.
불확실한 시장에서 외부 혁신을 먼저 발견, 협력하고 사내 기업가정신 확산 수단으로 CVC 활성화에 나설 것을 기대한다. 이를 위해 최고 경영진이 장기투자 의지와 결단력을 갖고 우수한 운영 역량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도 대기업의 자발적 CVC 활성화를 위해 역할이 필요하다. 대기업이 보유한 막대한 자금이 혁신 시장에 빠르게 투입될 수 있도록 효과 높은 지원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대기업 성장 지원 주장은 한국에서는 대기업 특혜 지적 때문에 기업, 정부에서 먼저 거론하기 까다롭다.
그러나 조만간 발족하는 새 정부에서는 대기업이 제대로 된 CVC로 벤처기업과 함께 더 높은 혁신을 이루는 데 한발 더 나아가도록 실질적 지원 정책을 펼쳐야 한다.
칼럼 제목은 짐 콜린스의 베스트셀러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의 영문 제목 'Good to Great'에서 차용했다. 대기업이 '덩치만 큰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Large to Great)' 변모하기를 기대한다. 마침 네이버에서 600억원 규모의 사내펀드 출범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와 기쁜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이종훈 국민대학교 글로벌창업벤처대학원 교수 hoonhoon@kookmi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