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혁신본부, 무거운 첫걸음

문재인 정부 과학기술 컨트롤타워인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출범과 동시에 암초를 만났다. 박기영 본부장 인선을 두고 연구계, 시민사회, 정치권이 반발했다. 혁신본부 앞날에 진통이 예고됐다.

과기혁신본부, 무거운 첫걸음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위원장 김준규)은 8일 '한국 과학기술의 부고(訃告) 띄운다'는 성명을 내고 박 본부장 임명 철회를 촉구했다.

연구노조는 박 본부장이 2005~2006년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 시절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에 연루돼 사퇴한 전력을 문제 삼았다. 당시 박 본부장은 '황우석 사태'를 미연에 막지 못한데다 황 전 교수와의 공동 연구로 도마에 올랐다. 황 전 교수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고, 연구비도 지원받았다.

연구노조는 “과학기술계에 오래된 적폐를 일소하고 국가 R&D 체제를 개혁해야 할 혁신본부에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사람을 임명했다”고 주장했다.

건강과대안, 보건의료단체연합, 서울생명윤리포럼, 시민과학센터, 한국생명윤리학회, 환경운동연합 등 9개 시민단체도 박 본부장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역사에 남을 만한 과학 사기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박 본부장을 과학기술정책의 핵심 자리에 임명한 것은 촛불민심이 요구한 적폐세력 청산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라면서 “연구 부정행위를 저지르고, 특정 과학자를 비호해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고 반성하지도 않는 인물이 세금으로 조성된 연구개발 예산을 심의 조정한다면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은 신뢰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야권의 반발도 잇따랐다. 양순필 국민의당 수석부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 주변에 4차 산업혁명 시대 과학기술 정책을 이끌 인재가 이렇게 없는지 개탄스럽다”고 밝혔다. 전지명 바른정당 대변인은 “과학기술 분야 혁신을 이끌 기관에 부정행위 전력이 있는 사람을 발탁한 것은 참신한 인사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황우석 논문 조작 사태는 학자로서의 양심과 윤리를 지키고자 하는 젊은 과학자들이 문제 제기를 하고, 전말을 밝혀내면서 그 진상이 드러났다”면서 “박 본부장은 과연 그들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박 본부장은 지난 7일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임명됐다. 혁신본부장은 연간 20조원에 달하는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심의 조정하는 것은 물론, 범 정부 R&D 정책을 조율하고 R&D 성과를 평가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무회의에 배석하는 차관급으로 격상됐다. 국가 R&D 예산 총지출한도(실링) 공동 설정, 예비타당성조사 등 권한 확대도 추진 중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3차관 격이지만 실제 권한·위상은 1차관보다 강하다는 게 중론이다.

박 본부장은 8일 오전 과기정통부 기자실을 찾아 기자들과 인사했으나 논란에 즉답을 피했다. 그는 “나중에 또 설명드리겠다”면서 5분 만에 떠났다.

청와대 관계자는 “황 박사와의 연구 논문에 대해서는 인사검증팀에서 이미 인지한 내용”이라면서 “하지만 중대한 결격사유라고 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