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조 수술 로봇시장, 글로벌 기업 각축전..韓 걸음마 수준

미래컴퍼니 수술 로봇 레보아이(자료: 전자신문DB)
미래컴퍼니 수술 로봇 레보아이(자료: 전자신문DB)

14조원 규모의 세계 수술용 로봇 시장을 두고 글로벌 기업 간 각축전이 뜨겁다. 기존 의료기기 기업은 물론 제약·정보기술(IT) 기업까지 시장 진입 채비로 분주하다. 국내도 첫 수술로봇을 출시했지만 지난 1년 동안의 대형병원 공급 사례가 전무한 실정이다. 민간 투자 분위기 조성, 정부 후속 연구개발(R&D) 확대, 글로벌 경쟁력 확보 등 전략이 필요하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세계 수술로봇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기존 시장 선두 업체는 R&D 투자를 강화하고, 제약과 IT 등 다양한 영역에서는 신규 진입을 노린다.

로봇 수술은 집도의가 직접 개복하지 않고 배에 1~6개 구멍을 뚫은 다음 현미경과 로봇 팔을 조작해 시술한다. 전립샘암, 자궁근종, 위암 등 다양한 수술에 쓰인다.

빠른 수술 시간과 회복, 감염 우려가 적은 장점이 입증되면서 세계 수술로봇 수요도 급증했다. 시장조사 기관 윈터그린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수술로봇 시장 규모는 2016년 42억달러(약 4조7741억원)에서 2022년에 130억달러(14조7771억원)로 세 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 세계 수술 로봇 시장 규모
전 세계 수술 로봇 시장 규모

시장이 커지면서 수술로봇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한 인튜이티브 서지컬이 고공성장을 하고 있다. 이 회사는 세계 최초로 수술로봇 '다빈치'를 상용화했다. 지난해에만 926대의 로봇을 신규 공급했다. 전년 대비 35% 증가했다. 지난해 4분 매출 역시 전년 동기 대비 17% 늘어난 10억5000만달러(1조1930억원)를 기록했다.

인튜이티브 서지컬이 주도하는 시장에 존슨앤존슨(J&J)이 추격을 시작했다. J&J는 지난달 내시경 수술로봇 기업 오리스헬스를 34억달러(3조8624억원)에 인수했다. 여기에 23억5000만달러(2조6700억원) 투자도 발표했다. 자체 개발을 넘어 외부 기술까지 단숨에 확보하는 전략이다.

구글 모기업 알파벳 역시 J&J와 세운 합작사 '버브 서지컬'을 중심으로 메드트로닉, 지멘스 등 의료기기 업체와 협업해 수술로봇 개발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버브 서지컬은 알파벳의 인공지능(AI), 증강현실(AR) 등 정보통신기술(ICT)과 J&J 의료기기 기술을 접목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메드트로닉, 지멘스 등 10여개 의료기기 기업과도 수술로봇 유용성 검증에 나섰다.

국내는 글로벌 수준 기술력을 갖췄지만 산업은 걸음마 단계를 면치 못하는 수준이다. 미래컴퍼니는 세계 두 번째로 복강경 수술로봇 '레보아이'를 개발, 지난해 3월 판매를 시작했다. 1년이 지난 현재 공급 실적은 중소병원 단 한 곳이다. 병원은 대당 20억~30억원에 이르는 고가 장비이다 보니 선뜻 국산 제품 도입을 주저하고 있다.

미래컴퍼니 관계자는 “레보아이는 국내 대형병원의 임상 시험으로 성능을 인정받았고, 외산 대비 40%에 이르는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면서 “로봇 수술이 비급여인 데다 고가 장비여서 경영진의 의사결정 과정이 길고, 교체 수요를 감안해야 해서 시장 확대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융합 산업 총아인 수술로봇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수술로봇은 의료기기 가운데 가장 고가인 데다 유지보수 등 중장기 수익 모델도 명확하다. 미국이 앞서 있을 뿐 후발 주자 간 격차가 크지 않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

이병주 대한의료로봇학회 이사장은 “인튜이티브 서지컬이 다빈치를 1위로 만들 수 있은 것은 막대한 민간 투자를 바탕으로 대규모 임상과 초기 공격적 공급이 주효했다”면서 “우리 기업은 대부분 규모가 작아 외부 투자 유치가 필수인데 민간 투자를 이어 줄 고리를 강화하고 정부의 후속 R&D가 이어질 경우 글로벌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