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없애야 합니다.”
어느 유명 정보기술(IT) 기업 임원이 한국의 교육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농담이 아니라며 던진 말이다. 교육 '혁신'이 아닌 '혁명'을 미션으로 에듀테크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나도 나름대로 과격한 편인데 고등학교를 없애는 정도의 파격은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수학능력시험 창시자인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가 줄 세우기로 변질된 수능을 바라보며 수능 폐지를 주장할 때에도 그 과감함에 박수를 보낸 기억이 있다. 한 술 더 떠서 고등학교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더욱더 참신하게 다가왔다.
실제로 입시 영어가 없는 국가의 사람들이 영어를 더 잘하는 아이러니를 흔히 볼 수 있다. '시험을 위한 영어공부'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외부 강연 때마다 '영어 시험 폐지'를 외치고 다닌다. 영화 '어벤져스'에 나오는 타노스처럼 손가락을 퉁겨서 고등학교와 시험 절반이 없어지는 흐뭇한 상상을 해본다.
앨빈 토플러는 “한국 학생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을 지식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이 교육청의 어느 홍보 자료에 있는 걸 보니 교육 당국도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아는 만큼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지는 못하다. 의식은 있는데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가위 눌린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수업 시간에 절반이 엎드려서 잠자는 한국 교실의 풍경이 곧 가위에 눌릴 아이들을 예고하는 듯 불안하다. 이럴 바엔 아예 고등학교를 없애자는 말이 일리 있어 보인다. 양산 과정에서 대량의 '수포자'(수학 포기자)와 '영포자'(영어 포기자)를 부산물로 발생시키는 학교의 주입식 일방 강의에 맞서 마이웨이 취침으로 응답하는 학생에겐 죄가 없다.
황금 같은 청년시절을 이보다 더 열심히 허비하는 방법이 있을까? 그 시간에 나가서 당구라도 치거나 어차피 가야 하는 군대를 갔다 오는 게 낫지 않을까? 공부를 하는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기어이 공부를 싫어하게 만들어야 하는가?
어이없는 상황임에도 세계 시장에서 불고 있는 에듀테크 열풍에 발맞춰 우리도 분발해야 한다고 업계, 정부, 언론 모두 고함을 질러 대고 있다. 세계 시장이 2017년 257조원에서 2020년 502조원 시장으로 성장한다지만 한국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즈음에서 물어야 한다. 에듀테크란 무엇인가?
“'테크'는 거들 뿐 본질은 '에듀'에 있다.”
입시에 맞춰진 교육에다 테크를 더해서 더 신속하게 주입하고, 더 철저하게 관리하고, 더 세심하게 평가해서 나노 단위로 줄을 세우는 것이 에듀테크인가? 아니면 요즘 한창 요란한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인공지능(AI), 코딩교육이 에듀테크인가? 과거 정부 때는 디지털교과서 예산을 2조원 넘게 책정하면서 디지털교과서와 전자칠판이 에듀테크라 하지 않았는가.
교육에 대한 심오한 고찰 없이 참을 수 없는 기술의 가벼움으로 점철된 전시 행정은 교사와 학생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외력을 가하지 않고 학생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데 '테크'가 투하돼야 한다.
창의성이 풍부한 아이로 길러 내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창의성이 풍부한 아이들이니 기술은 조연 역할만 하면 된다. 'What'을 효과 높게 머릿속에 넣어 줄 테크가 아니라 'Why'를 묻는 사고력을 발화시킬 기술이어야 한다.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보단 친구 입장에 설 줄 아는 공감 능력을 증폭시키는 테크.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는 인격체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기술이 거들 때에만 에듀테크의 진가가 발휘된다.
우리 회사는 세계 최대 에듀테크 박람회인 영국 런던 교육기자재박람회(BETT)쇼에 6년 연속 전시 및 참관하고 있다.
내년엔 전체 직원이 참관하러 간다. 전 직원이 저자로서 모든 전시 업체를 분석 평가하는 보고서를 국·영문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이곳에도 교육이 마치 패션처럼 그해에 유행할 '핫템'을 찾는 것인 양 '에듀'라는 본질은 외면하고 곁가지인 '테크' 제품을 들고 나오는 업체가 부지기수다.
지난해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에 이어 올해는 코딩교육, 코딩 블록과 로봇이 런웨이를 장식한다. 어느 현지 교사는 패션쇼의 화려한 의상 가운데 내가 입을 만한 옷이 없듯 전시되는 솔루션 태반이 실제 교육 현장에 적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교사에게 필요한 건 자신을 도와줄 일꾼이지 일감이 아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에듀테크는 일감이 될 뿐이다. 지금은 그런 일감을 만들 시간이 없다. 교육의 핵을 향해 달려가다가 두 다리가 다 녹아내린다 해도 후회 없을 에듀테크의 본질에 전념해야 한다. 심폐소생을 받고 있는 우리 교육을 살릴 각오로, 엄중하게.
김성윤 아이포트폴리오 대표 sykim@iportfoli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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