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후보자가 장관 입성을 위한 9부 능선을 넘었다. 최대 고비였던 청문회도 큰 문제없이 끝났다. '링링'에 맞먹는 메가톤급 태풍인 조국 후보자 때문에 '맹탕 청문회'였다는 비판이 있지만 후보자 입장에서는 한숨을 돌렸다. 운도 따라줬고 무엇보다 큰 흠결이 없었다. 야당이 청문보고서 채택에 반대했지만 빠르면 이번 주에 무리 없이 임명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최 후보자는 지명 때부터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다. 걱정스런 눈빛이 우세했다. 전문성은 합격점 이상이었지만 출신이 문제였다. 교수라는 직업 속성이 갖는 선입관이었다. 현장감이 떨어지고 관료조직을 장악하기가 쉽지 않으며, 무엇보다 정무능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꼬리표처럼 붙어 나왔다. 학자 외길을 묵묵히 걸어온 최 후보자는 답답할 수 있다. 괜한 기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교수 출신 역대 장관이 보여준 결과는 신통치 않았던 게 사실이다.
교수로서 한계를 비판하지만, 따져보면 완벽한 장관은 없다. 고고한 품성에 리더십도 갖추고 정무 감각이 뛰어난 인물은 초등학교용 위인전에서나 찾아 볼 수 있다. 정치인이든, 고위 공무원이든, 기업인 출신이든 강약이 존재하는 법이다. 약점 보다는 오히려 강점을 부각하는 게 현명하다. 장관직은 출신에 관계없이 성과를 내야하는 자리라는 사실만 잊지 않으면 된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앞길은 순탄하지 않다. 과제는 산더미다.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고 원천기술을 위한 로드맵이 필요하다. 5G망 기반의 혁신서비스를 위한 전후방 산업도 육성해야 한다. 신산업을 가로막는 규제 개혁도 두 팔을 걷어 붙여야 한다. 부품·소재·장비 등 핵심기술의 자립 역량도 확보해야한다. 혁신성장도 빼 놓을 수 없다. 모두 최 후보자가 청문회 자리에서 약속한 내용이다. 업계 현안까지 포함하면 끝도 없다. 과제가 산적할수록 우선순위가 중요하다.
필요하고 시급한 과제지만 가장 중요한 걸 놓쳤다. 바로 과학과 정보통신기술(ICT)의 정체성이다. 안타깝지만 정부 출범 내내 과기정통부는 존재감 부재에 시달렸다. '3만 달러, 수출 강국'을 만든 주역이 과학과 ICT이고, 과기정통부는 4차 산업혁명을 위한 간판 부처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변화된 시대와 기술흐름에 맞게 새로운 역할과 임무를 요구받지만 방향을 잡지 못했다. “아, 옛날이여”를 외치며 잘 나가던 과거에만 집착했다.
정체성은 결국 '거버넌스' 문제다. 따져보면 ICT와 과학만큼 부침이 컸던 부처도 드물다. ICT는 체신부로 시작해 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에 이어 지금 과기정통부에 이르렀다. 쪼개고 합치기를 반복하는 '누더기 역사'였다. 과학은 과학기술처로 출발해 과기부, 교육과학기술부, 미래창조과학부를 거쳐 과기정통부까지 매번 정부가 바뀔 때마다 새로(?) 태어났다. 정체성은 흔들릴 때로 흔들렸고 결국 이번 정부에서 임계점에 달했다. 거버넌스는 단순히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조직 변화 차원이 아니다. 과학과 ICT 존재 기반은 물론 청사진과 연관돼 있다.
최기영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과기정통부 장관일 가능성이 크다. 큰 과오가 없다면 전문가를 중용하는 게 대통령 스타일이다. 교체할 시간도 없다. 2017년 5월 출범했으니 이미 반환점을 돌아 2년 남짓 남았다. 정권 후반 레임덕까지 감안하면 길어야 1년 반 임기뿐이다. 그래도 시간이 많다고 이야기할지 모른다. 결코 그렇지 않다. 집권 전반 과학과 ICT의 초라한 위상에 비쳐보면 이미 늦었다.
취재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