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괴담의 사회학

최근 우리 사회에서 기술 위험, 즉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간 활동과 기술 산물로 빚어지는 위험을 둘러싼 논쟁, 이른바 괴담 공방이 뜨겁다. 2008년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발하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대규모 촛불 시위가 벌어지고 광우병 위험을 둘러싸고 전문가와 시민 사이에서 큰 시각차가 벌어졌다.

[과학산책]괴담의 사회학

더 뜨거운 괴담 공방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시민 사이에서 확산된 방사능 공포에서 비롯됐다. 새누리당과 일부 보수 언론은 방사능 괴담의 진원지가 방사능 불안감을 조장하는 불순한 좌파세력 때문이라는 색깔론을 들고 나왔다.

현재 진행형인 밀양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갈등도 고압전류와 전자파 위험을 둘러싸고 비슷한 패턴의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생존 문제를 이념투쟁 수단으로 변질시키는 사람들이 어르신들에게 쇠사슬을 채우고 구덩이로 밀어넣고 있다”고 외부세력 책임론을 제기했다.

주제는 광우병, 방사능, 전자기파 등으로 바뀌었지만 우리 사회의 대응 방식은 거의 천편일률적이다. 정부와 정부측 전문가는 항상 녹음기처럼 안전하다는 말을 되풀이하지만 시민사회의 불안감은 잦아들지 않는다. 일부 주부는 개인적으로 고가 방사능 측정기를 구입해서 먹거리를 일일이 검사하기까지 한다.

정부는 습관처럼 색깔론을 들고 나와 이른바 불순한 이념 투쟁에 기술 위험이 악용되고 있다는 주장으로 몰아갔다. 가장 큰 원인은 위험 담론을 독점하려는 정부의 위험 커뮤니케이션 실패다. 오늘날 많은 학자가 기술 위험 해법을 찾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으로 무엇이 위험한지 여부를 정부는 물론, 그 누구도 독점해서는 안 되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는 점을 꼽는다.

기술 위험을 사회적 맥락에서 분리시켜 순수하게 과학적으로만 다룰 수 있다는 생각은 가장 심각한 과학주의이자 허위의식에 불과하다. 선량한 시민과 불순한 외부세력을 분리할 수 있다는 생각만큼이나 잘못이다.

오늘날 위험은 우리의 일상이 됐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론에서 현대 사회의 특징이 위험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술과 사회의 고도하고 복잡한 연결망이 형성되면서 더 이상 기술위험을 소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험은 우리 사회와 삶의 정상적인(nomal) 일부가 됐다. 따라서 우리는 위험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위험을 잘 다스리고 최소화시키는 지혜를 시민사회 전체가 함께 빚어내야 한다.

위험이 `실재(實在)냐, 사회문화적 구성물이냐` 해묵은 논쟁은 오래전 환경사회학에서 시작됐다. 오늘날 위험을 사회·문화·역사적 맥락에서 분리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유전자재조합(GM) 식품의 위험 인식이 나라마다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GM 작물을 수출하는 미국과 수입국인 유럽의 위험 인식은 극과 극이다.

미국 거버사는 최근 아기들의 이유식에 GM 원료를 사용하다 중단할 정도로 GM 식품 위험에 둔감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GM 식품은 프랑켄 푸드라는 오명까지 쓰고 있다. 그렇지만 영국정부는 시민들의 불안감을 괴담, 외부 불순세력의 선동, 무식의 소치 등으로 몰아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2003년 정부가 나서서 `GM 국가(GM nation)?` 이라는 전국 차원의 대중 논쟁을 조직해서 2만이 넘는 시민이 끝장 토론을 하도록 멍석을 까는 역할을 자임했다.

정부가 할 일은 위험 담론을 독점하려는 불가능한 시도가 아니라 시민들의 논쟁과 소통을 북돋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에서 한 철학자가 “의심은 소통의 시작”이라고 한 말을 되새겨볼 일이다.

김동광 고려대학교 과학기술학연구소 연구교수 kwahak@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