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온고지신]즐기는 과학자

[사이언스 온고지신]즐기는 과학자

우리나라 과학자에게 잔인한 10월이 또 그렇게 지나갔다. 더구나 이번에는 동북아 3개국 중 유일하게 우리만 노벨 과학상이 전무한 나라가 되었다. 과학기술계도, 언론계도, 정부당국도 노벨상 계절에만 반짝 관심을 가질 뿐 그냥 다시 일상으로 휩쓸려 지나는 건 아닌 지 반성해 본다.

원래 과학이란 출발이 철학이었다. 다분히 지적 취미 활동이었다. 아르키메데스는 물론 케플러, 다윈, 뉴턴 같은 위대한 과학자가 과학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않았던 것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

취미인 과학 활동과 기술이 상호작용을 통해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과학자란 직업군이 탄생하면서 선진 각국은 ‘기술입국’으로부터 ‘과학기술 입국’ 시대로 변했다.

19세기에는 국가 과학기술 정책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국가 발전은 새로운 아이디어 소산이며 이의 원천은 독창적인 연구임을 간파해 비록 국가가 설립한 연구소임에도 불구하고 연구 불간섭 전통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일본은 서양 과학기술이 국력 바탕임을 가장 먼저 받아들여 이미 1910년도부터 ‘과학기술 입국’을 내세워 아시아 유일 선진국으로 발돋움 했다. 그러나 그들도 1980년대 들어 산업공동화, 경제성장 정체 등 국가발전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돌파구를 과거 경제성장 도구로서 과학기술을 탈피한 세계 인류에 공헌하는 진정한 창조형 과학기술에서 찾고 이를 정책에 적극 반영하기 시작하였다. 과학기술자 창의성을 중시한 결과가 다수 노벨상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개방과 더불어 뒤늦게 과학기술 전쟁에 뛰어든 중국은 우리의 과거 ‘유치 과학자’ 제도와 유사한 ‘백인계획’ ‘천인계획’ ‘만인계획’ 등 해외 과학자 유치 및 과학 인재에 대한 파격적 지원 정책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이제 우리를 되돌아 보자.

우리보다 앞서간 나라 과학기술 정책 중 우리가 따라하거나 참조하지 않은 정책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 덕분에 세계가 놀랄 빠른 성장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그 정책의 근본 철학을 잘 이해하고 우리 몸에 맞게 집행되었는가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우리는 열심히 달려왔지만 이공계 기피 현상, 연구원 사기 저하, 연구생산성 미흡에 이어 산업경쟁력 약화라는 위기에 봉착하기 시작했다.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이 과거 이미 경험했듯이 이러한 위기 돌파는 항상 기본으로 돌아가기였다. 즉 과학기술자 창조성이 날개를 펴도록 하는 것이다.

정책 당국도 세금을 사용하는 ‘기타공공기관’이니 모든 것을 감사, 평가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출연연구기관’을 만든 초심으로 되돌아 가야한다.

골프나 야구에서도 어깨에 힘을 빼야하듯이 너무 목표 지향적이면 홈런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즐기는 과학자’ 없는 창조경제는 화병 속 꽃일 뿐 열매를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과학기술자도 우리 선조 과학자들이 그랬듯이 미친 듯 재미있는 취미생활 같은 자세로 연구하도록 하자.

나만이라도 명예나 이해관계에 구애받지 않고 연구에 미쳐보자. 우리가 연구하기 좋은 환경을 우리 스스로 만들도록 노력하는 첫 단추일 것이다. 연구천국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연구천국만이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들어가는 만능열쇠이기 때문이다.

이정순 과학기술연우연합회 수석부회장 jslee30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