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핫이슈]유전자 변형 돼지

봉준호 감독의 새 영화 '옥자'가 화제다. 영화에 등장하는 '슈퍼 돼지'도 관객 호기심을 자극한다. 영화 속 상상은 현실의 과학에 바탕을 뒀다. 돼지 유전자를 조작해 장기 이식, 질병 치료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하는 연구가 봇물을 이룬다. 사람과 내분비·생리학적 특성이 비슷한 돼지는 생명공학 연구에 최적인 동물로 각광받는다.

영화 속 '옥자'는 슈퍼 돼지로 묘사된다. 덩치가 하마만큼 크다. 사육 과정이 친환경적일 뿐만 아니라 고기 맛이 뛰어나다. 옥자를 탄생시킨 생명공학 기업은 심지어 이 동물이 '아름답다'고 홍보한다. 옥자처럼 종을 뛰어넘는 수준은 아니지만 다양한 '슈퍼 돼지'가 현실 세계에도 존재한다.

영화 '옥자'
영화 '옥자'

옥자와 가장 비슷한 돼지는 '근육 슈퍼 돼지'다. 우리나라 연구진과 중국 옌볜대 연구진이 탄생시킨 이 동물은 일반 돼지에 비해 근육량이 2배가량 많다. 유전자 돌연변이를 일으켜 근육량을 키운 돼지다. 발육이 뛰어나고 영양분이 많은 유전자조작(GMO) 콩과 비슷한 원리다. 콩이 GMO 식물이라면 근육 슈퍼 돼지는 GMO 동물에 해당한다.

근육 슈퍼 돼지는 '마이오스타틴' 단백질 합성을 조절하는 유전자에 변형을 가해 만들었다. 마이오스탄틴은 근육 생성을 억제하는 단백질이다. 단백질 합성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난다. 마이오스탄틴 합성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망가뜨리는 방식이다.

근육 슈퍼 돼지와는 반대로 신체 기능을 떨어뜨린 돼지도 있다. 이른바 '치매 돼지'는 알츠하이머 치료제의 전임상 연구에 이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존 쥐 실험보다 좀 더 임상에 가까운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제주대 줄기세포연구센터도 최근 알츠하이머 치매를 일으키는 유전자 3개를 가진 체세포 복제돼지 '제누피그' 생산에 성공했다. 알츠하이머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농도를 높이는 유전자 3개를 모두 가졌다. 제누피그는 사료 섭취 방식과 자동 급수기 사용법을 잊는 등 치매 증세를 보였다.

돼지가 전임상 시험 모델로 각광받는 건 대(大)가축 동물이기 때문이다. 쥐와 사람 사이 차이를 메울 동물 시험 모델이다. 치매 외에도 각종 치료제 테스트에 이용할 수 있다. 대부분 제약회사는 임상 시험 전 쥐를 이용해 신약 효능과 독성을 확인한다. 쥐와 사람의 유전적 격차가 커 전임상 성공 후 임상 시험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돼지는 쥐에 비해 사람과 유전적 차이가 적다. 장기 구조가 비슷하고 생리 특성도 가깝다. 번식력도 뛰어나 세대·개체 간 특성 파악이 쉽다. 이 때문에 알츠하이머처럼 인간과 동일한 질병을 앓는 돼지를 복제하려는 연구가 활발하다.

각종 슈퍼 돼지의 탄생은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유전자 가위' 기술 덕분이다. 말 그대로 염기서열 중 특정 유전자를 자르고 끼워 넣을 수 있는 기술이다. '3세대 가위'로 불리는 크리스퍼(CRISPR)에 이르러서는 대부분 생물의 유전체 정보를 교정할 수 있게 됐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각광받는 것은 유전자 조작의 폭을 넓혔기 때문이다. 1970년대 제한효소로 DNA를 자르고 붙이던 방식은 인식할 수 있는 서열의 길이가 짧아 활용도가 낮았다. 인간 DNA 길이에 한참 못 미쳐 의도하지 않은 DNA까지 잘라버릴 수 있다. 이후 징크 핑거, 탈렌 단백질을 활용한 유전자 가위(2세대) 역시 인식 서열 한계가 있어 높은 비용을 유발했다.

2012년 미국, 독일 연구진이 크리스퍼를 유전자 가위로 쓸 수 있는 'Cas9' 단백질을 찾아내면서 3세대가 열렸다. Cas9 단백질이 가위의 역할을, RNA가 자르는 대상을 판별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기존보다 간편한 유전자 조작이 가능해졌다. 쥐 실험 성공 후 소, 돼지 등 기존에 유전자 조작을 할 수 없었던 생물 실험에도 성공했다. 그 중에서도 돼지에 유전자 가위 기술을 적용하면 다양한 가능성이 열린다. 다른 종 동물에 장기를 이식해도 거부 반응이 없는 개체, 질병 내성을 가진 개체 등이 연구되고 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