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핫이슈]식탁 덮친 살충제 공포

살충제 계란 파동이 한국을 덮쳤다. 파동은 유럽에서 먼저 일었지만 국내 농장에서 나온 달걀에도 피프로닐, 비펜트린이 검출되면서 파문이 확산일로다. 밀집 사육 환경에서 닭의 몸에 붙은 진드기를 잡기 위해 뿌린 살충제가 식탁까지 오르게 된 것이 문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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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충제는 바이러스, 세균과 달리 화학 물질이다. 열을 가해 익혀도 해결되지 않는다. 건강한 성인이 미량 섭취하는 것으로는 큰 문제가 없지만 취약 계층은 위험하다. 피프로닐, 비펜트린은 독성도 매우 높다. 밀집 사육을 고집하면서 식용 가축에 사용할 수 없는 위험 약물을 남용한 것이 문제다.

피프로닐은 벌레, 이, 진드기 등을 죽이는 데 사용되는 살충제 성분이다. 반려동물의 체외 구충제, 골프장·잔디밭의 방제약으로도 사용된다. 곤충의 중추신경계를 과다 흥분시켜 파괴하는 물질이다. 포유류에 미치는 영향은 적다고 알려졌지만, 축적되면 위험하다는 경고가 많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프로피닐을 중등도 위험물로 분류한다. 사람이 노출될 경우 구토, 두통, 복통 등을 겪을 수 있다. 장기간 반복 노출되면 신장, 신경계에 위협적이다. 피부 등에 직접 접촉해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살충제가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데는 약 2주가 걸린다고 알려졌다. 건강한 성인의 소량 섭취는 괜찮지만 노약자, 어린이, 임산부는 위험할 수 있다. 식량농업기구(FAO)와 WHO의 국제식품규격위원회가 제정한 코덱스(codex) 기준에 따르면 계란의 프로피닐 허용 기준은 0.02ppm, 닭은 0.01ppm이다.

수치 상 독성은 경계할 수준이지만 치명적 위험은 아니다. 실험 쥐 모델에서 반수치사량은 97㎎/㎏이다. 반수치사량은 실험동물의 반이 죽는 섭취량을 뜻한다. 급성 독성을 나타내는 지표다. 1㎏ 당 97㎎을 먹였을 때 쥐의 절반이 죽는다. 성인 사람으로 환산하면 반수치사량이 5.8g 정도다. 단순 계산하면 계란 수백만 개를 먹어야 생명 위협이 생긴다.

그럼에도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식품 안전에 구멍이 뚫렸다는 공포 때문이다. 유럽에서 먼저 문제가 된 뒤에도 정부가 제때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 친환경 인증 계란까지 문제가 됐다는 점 때문에 논란이 확산된다. 무엇보다 프로피닐은 인간이 직접 섭취하는 가축에는 사용이 금지된 상태다.

먼저 문제가 발생한 유럽은 프로피닐 위험성을 경계한다. 계란 섭취도 자제시킨다. 독일 정부는 하루에 7개(몸무게 65㎏ 성인 기준) 넘는 계란을 섭취하면 치명적이라고 경고한다. 몸무게 16.15㎏ 이하 아동은 1.7개 이상 계란을 먹지 않도록 당부했다.

닭고기 유해성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정부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계란은 물론 알을 낳은 산란계에서도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 산란계는 보통 고기로 유통되지 않는다. 농가도 다르고 사육 환경에도 차이가 난다. 육계는 비교적 넓은 장소에서 사육해 30일 안에 출하한다. 반면 산란계는 좁은 우리 안에 65~80주 사육한다. 산란계가 고기로 유통될 가능성은 낮은 셈이다.

하지만 산란계 일부가 가공식품용으로 공급될 수 있고, 살충제 성분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난 만큼 조사가 필요하다. 실제 계란의 프로피닐 성분 역시 닭에 묻은 살충제가 체내 흡수되면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 유럽 일부 국가도 계란에 이어 닭고기 조사를 시작했다.

과밀한 사육 환경의 '공장식 축산'을 향한 근본 문제 제기도 이어지고 있다. 닭은 방사 환경 이른바 '흙 목욕'을 하면서 진드기를 털어낸다. 하지만 농장 사육 환경은 다르다. 마리 당 A4용지 3분의 2 크기에 해당하는 좁은 공간에 갇혀 알을 낳는다. 이 공간에서는 스스로 진드기를 털어낼 수 없다. 서로 붙어 있으니 진드기를 옮기기도 쉽다. 결국 살충제 사용이 불가피하다.

기후변화로 농장 내 진드기가 늘고, 내성도 심해지면 농장주는 더 센 살충제를 찾는다. 밀집 사육 환경의 진드기 문제가 금지 약물 남용으로 이어졌다는 진단이다. 진드기 문제는 공장식 축산에서 피하기 어렵다. 닭 진드기는 영하 20~영상 56℃에서까지 살아남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본적으로 진드기 문제를 완화할 사육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살충제 사용을 피하기 어렵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