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구글의 모토로라 모빌리티 인수 발표로 주요 휴대폰 업체 주가가 폭락했다. 기사회생한 모토로라와 일찌감치 마이크로소프트를 잡은 노키아는 웃었다. 더 활짝 웃은 이가 있다. 칼 아이컨 아이컨엔터프라이즈 회장이다. 이 ‘기업 사냥꾼’은 파트너들과 함께 2008년에 모토로라 주식을 샀다. 무려 30억5000만달러 어치다. 특허권만 팔아도 손해 없는 투자라는 판단이다. 모토로라는 삼성과 LG에게 밀렸다. 아이컨이 주당 30달러에 산 주식은 12달러로 추락했다.
구글이 인수를 발표한 날, 모토로라 모빌리티 주가가 55.7%나 뛰었다. 아이컨은 오랜 수모를 단번에 씻었다. 인내의 결실인가. 3분의 1은 맞다. 3분의 1은 애플과 구글의 싸움 덕분이다. 나머지는 아이컨의 능력이다. 그는 경영진 물갈이 ‘약발’이 듣지 않자, 2009년 말 기업분할을 요구했다. 모토로라는 결국 지난해 9월 이 요구를 수용했다. 아이컨이 웃음을 되찾았다면 아마 지난주가 아닌 이때였을 것이다.
모토로라 같은 기업의 주식을 기술주라고 부른다. 미국은 기술기업의 천국이다. 정작 기술주 인기가 형편없다. 이른바 가치투자자들이 외면하기 때문이다. 가치투자는 기업가치와 비교해 덜 평가된 주식을 사, 주가가 제 가치를 반영할 때까지 팔지 않는 투자다. 주가순자산비율(PBR), 주가매출액비율(PSR), 자기자본이익률(ROE)과 같은 평가 지표를 중시한다.
기술기업은 이런 지표가 낮다. 그 대신 성장성이 좋다. 기술주를 ‘성장주’라고 부르며 ‘가치주’의 반대편에 놓는 이유다. 가치투자자들은 기술주를 ‘투자’ 아닌 ‘투기’ 종목이라며 깎아내린다. 눈길조차 줘선 안 된다고 말한다. 90년대 말 인터넷과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같이 기술주 붐이 일 때마다 이런 비판을 쏟아냈다. 거품을 경험한지라 투자자들이 기술주 투자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정말 기술주 투자는 투기일까. 기술주는 가치주가 될 수 없나. 가치주와 성장주는 양립이 불가능할까. 성공 투자의 역사는 세 질문 모두 아니라고 답한다. 워렌 버핏을 비롯한 가치투자의 거장들은 가치주와 성장주를 구분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덜 평가된 주식을 싼 값에 사고’ ‘성장률과 잉여현금과 같은 판단 근거를 중시하는’ 원칙만 있다. 버핏이 기술주에 투자하지 않은 것은 실적 예측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가치투자 창시자’라는 벤자민 그레이엄도 가치 분석을 판단 수단으로만 제시했다. ‘가치주’는 투자 손실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주식일 뿐이다.
빌 밀러 레그메이슨자산운용 회장은 수익률로 15년 연속 S&P500지수를 이긴 펀드 투자의 귀재다. 가치투자 기법에 수확체증법칙과 같은 신경제 메커니즘까지 잘 읽어 기술주를 많이 샀다. 그는 아마존을 가치주로 평가했다가 가치투자자들의 맹비난을 샀다. 그는 되묻는다. “이 친구들이 아마존의 현금흐름을 추정해봤는지 모르겠네.”
‘구글-모토로라 쇼크’로 지난 주 우리나라 기술주들이 폭락했다. 이른바 ‘큰손’인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 조정 차원에서 매도했다. 된서리 맞은 개미들은 ‘손 절매’를 했다. 큰손들은 주가가 너무 떨어졌다 싶으니 이 주에 다시 사들인다. 이들은 경영에 직접 관여한 칼 아이컨도, 기술주의 성장성을 이해하려고 카오스이론까지 공부한 존 밀러도 아니다.
큰손들은 성장성을 포함한 정교한 기업가치 분석보다 유행에 민감하다. 단타 매매자와 다를 바 없다. 이들을 개미들이 맹목적으로 믿고 따른다. “역시 기술주보다 가치투자가 정답이야”라는 앞뒤 안 맞는 말이 객장에 맴돈다. 세계 1·2위 반도체, LCD, TV, 가전업체를 경영난에 몸통까지 내놓은 모토로라와 HP보다 못한 기업인 양 취급한다. 정말 기이한 일이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