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갑자기 돈 쓸 일이 생겼을 때 별 부담없이 찾던 곳이 전당포였다. 도시 서민들의 「비상금고」 역할을 톡톡히 했던 전당포도 돈을 빌려 줄 때는 반드시 물적 담보를 받는다. 아무리 사정이 급하거나 딱해도 물적 담보가 없으면 동전 한 닢 빌려주지 않는다. 피도 눈물도 없는 고리대금업자의 얘기들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도 등장한다.
요즘은 이와 다르다. 담보가 없더라도 신용만 있으면 금융기관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돈을 쉽게 빌릴 수 있다. 외국의 금융기관에서는 비록 물적 담보가 없더라도 기술의 우수성이나 시장성, 사업의 유망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기업에 신용만으로 거액의 사업자금을 빌려준다고 한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만으로도 돈을 빌릴 수 있는 곳이 금융기관인 것이다. 세계적인 기업가로 꼽히는 사람들 중에도 이러한 신용대출을 밑천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담보가 없으면 금융기관들이 돈을 잘 빌려주지 않는다. 담보력이 약한 중소기업들에는 금융기관의 문턱이 한없이 높다. 기술을 담보로 자금을 빌려주는 제도도 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때문에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만 갖고 있는 벤처기업에는 금융기관이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미국이 벤처비즈니스의 천국으로서 자리잡게 된 것은 특유의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한 창업자의 의지와 벤처기업을 상대로 한 전문 개인투자자들인 에인절의 투자욕구가 맞물려 산업이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술은 있으나 자금이 부족해 쩔쩔매는 우리나라 벤처기업들은 현재 말그대로 천사같은 에인절을 만나고 싶어 한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이 벤처기업과 투자자를 연결시켜주기 위해 9일 여의도 사학연금회관에서 개최하는 「벤처마트」는 자본이 필요한 신기술과 고수익을 쫓는 자금이 최적의 파트너를 찾을 수 있는 맞선의 장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이를 계기로 요즘의 벤처 붐을 「벤처버블」로 만들지 않고 우리나라 고유의 「벤처문화」로 정착시켜야 한다. 그래야 한국에서도 빌 게이츠같은 천재 기업인들이 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