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IT비전>전자국토 완성-`e좋은 山河` 디지털로 보존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국토종합개발계획’은 한국에게 한강의 기적을, 배고픈 민초들에겐 먹거리를 가져다줬다. 일명 ‘박통식’으로 지칭되는 국가 주도의 개발경제 정책이 가난했던 살림살이를 해결해준 시절이었다. 지금은 기성세대가 돼버린 이들은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이런 정부시책을 줄줄 외다시피했다. 하지만 잠깐 생각해보면 경제개발이나 국토개발이니 하는 말들이 어느 사이엔가 자취를 감췄음을 느낀다. 요즘은 장년층에게조차 희미한 기억이 돼버렸고, 20대 초반 이하의 젊은이들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변한다 한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경제나 국토의 중요성은 변함이 없다. 흔히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급진전하고 있다는 요즘, 한국경제의 성장 동력과 비전은 무엇일까.

 최근 학계 등에서 제기되고 있는 ‘전자국토(electronic territory)’ 개발론은 정보기술(IT)의 ‘확산과 심화’를 전제로 21세기 국가발전 전략을 새롭게 짜자는 주장이다. 산업사회 국토의 활용이 물리적 자원을 바탕으로 극히 제한돼 있었다면, 디지털 경제 환경에서는 사회 전반의 인적·물적 자산을 효과적으로 배분·재편하고 그 활용의 지평을 넓히자는 것이다. 미래를 통찰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전자국토론이 조명받는 이유다.

 ◇전자국토란=전자국토란 일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제반 물리적 활동과 자원이 교류되던 공간(물리공간)의 한계를 전자공간을 통해 효율적으로 대체, 보완한 공간이다. 여기서 전자공간은 강력하고 광범위한 네트워크 환경에서 다종다양한 사이버 활동이 전개되는 영역. 가상현실이나 웹서핑처럼 ‘사이버’만의 특성을 담으며 독자적인 공간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물리공간과의 접목을 통해 새로운 복합공간과 부가가치를 창출하기도 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소위 시공간의 무제한, 수확체증의 법칙이 전자공간의 주요한 특징으로 부각됐다. 한마디로 전자국토는 기존 물리적 자원들이 산재한 국토에서 새로운 디지털 국토의 속성이 결합된 국가 영역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99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주관 아래 진행된 ‘21세기 정보사회에 대비한 전자국토 종합개발계획 수립에 관한 연구’는 전자국토란 개념을 국내에 처음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전자국토는 새로운 디지털 경제 환경의 국가자원이란 뜻을 담고 있으며, 개발여하에 따라 무한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전자국토는 △기존 물리적인 공간을 활성화시키는 시너지 효과 △물리적 국토 기능을 대체하는 효과 △물리적 국토의 활동·수요를 유발하는 효과 △기존 도로·철도·에너지 등 물리적 네트워크의 활용도를 제고시키는 효과 등을 담고 있다.

 ◇전자국토의 적용분야=전자국토의 활용분야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 크게는 산업·행정·교육·가정·의료·환경 등 기존 국가영역이 모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산업부문의 경우 경영관리, 제조·물류정보화, 금융정보화 등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행정부문은 재택민원 서비스, 공공기관간 영상회의 등 다양한 양태를 띤다. 교육부문의 원격교육, 가정부문의 지능형 안방극장(홈시어터), 의료부문의 원격진료, 환경부문의 환경감시 시스템 등 분야별로 전자국토의 활용성은 광범위하다. 실은 정보통신부 발족 이래 정보화 강국을 기치로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확충한 것이 그 시초였고, 최근 ‘사이버 코리아’는 전자국토 개발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전자국토 개발론에서 보자면 정보화 촉진을 위한 현재의 공공근로사업은 디지털 시대의 ‘네오 뉴딜’ 정책인 셈이다.

 더욱 상세히 살펴보면 어느 정도 밑그림이 잡힌다. 전자국토의 공공부문은 전통적인 환경에서와 마찬가지로 공익을 실현하기 위한 공간이다. 국가경영 활동의 효율성 극대화, 국민의 권리와 편익 증대, 국가 정보자원의 총체적·효율적 관리, 각종 공공자원의 이용·관리를 모두 포괄하는 영역이다. 상업공간의 경우 IT를 활용한 상거래·정보유통 영역으로, 전통적인 시장경제의 구성요소들이 디지털 형태로 대체돼 존재한다. 여기서는 디지털 기업과 상거래시스템, 소비자보호 시스템이 창조되고, 가상시장이 형성돼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상업공간이 창출된다. 정보-화폐-재화가 IT를 기반으로 통합되는 셈이다. 전자국토의 산업공간은 기업의 제반 생산활동을 디지털 환경 아래 재탄생시킨 영역이다.

기업의 지식경영은 물론, 연구개발(R&D)·특허정보·인력정보·투자정보 등 제반 정보유통체계가 통합돼 있고, 생산활동 전과정이 고도의 호환성·연계성을 확보한 형태다. 가상기업이 등장하는 것도 결국 전자국토의 한 산물이다. 교육공간의 경우 모든 국민이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가상교육공간·교육정보유통공간이다. 한마디로 사이버 세상에서 실현할 수 있는 평생교육 시스템인 것이다. 정보사회에 필요한 지식·정보인을 육성하기 위한 모든 채널을 활용할 수 있다. 문화공간은 오프라인 기반의 지적활동이 전자적으로 더욱 확대되거나 중첩됨으로써 새로운 예술영역과 엔터테인먼트 영역을 창출하기도 한다. 디지털 문화상품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과연 전자국토의 효력은 어디까지 미칠까. 물론 종전 산업사회에서의 영토 개념과는 확연히 다르다. 전자공간의 특성을 고려하자면 기존 물리적 영토와 함께 국가의 모든 정보자원, 국내에서 영위하는 모든 사업자들의 활동공간, 대한민국 국적을 나타내는 공간(예 ‘.kr’), 서버가 국내에 있는 사업자의 이용공간 등으로 확대된다. 그만큼 전자국토의 기대효과도 현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것이다.

 ◇범산업의 재편=전자국토가 가져올 가장 뚜렷한 미래는 IT활용을 극대화한 산업부문의 확산과 심화다. 각 산업부문의 독자적인 영역이 IT를 통해 더욱 심화·발전되는 한편, 타 부문으로의 확장과 연계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최근 거론되는 생명공학(BT)·환경기술(ET)·나노기술(NT)에 우리의 장래를 건다는 것도 IT활용을 전제로 한 구상이다.

 기업활동면에서 보자면 전자국토가 배태하는 산업공간은 기업내부, 기업간, 기업대소비자간 관계가 정보와 지식을 기반으로 더욱 지능화·유연화되는 양태다. 그 효과는 경제주체별 비용절감과 소득증가, 소비자 만족 향상으로 추세화된다. 특히 전자국토 개발을 통해 금융·물류 등 산업기반 시스템이 시공의 한계를 초월해 고도화됨으로써 산업 전체의 동맥경화 현상을 치유하고, 새로운 사업모델과 상거래 유형을 만들게 된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더욱 강력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으며, 반대로 신흥 비즈니스 모델에 전통적인 주도권을 넘겨줄 수도 있다. 다양한 비즈니스의 창출로 신규 고용기회가 제공되는 것은 물론, 소비자 구매력 증가로 생산-소비의 선순환 고리가 형성되기도 한다. 이는 종국적으로 전자국토의 산업공간이 지닌 전지구적 네트워크 현상과 수확체증의 원리에 의해 종전 산업사회와 뚜렷한 구별점을 갖는다. 시공간 및 매체의 융합이 급속도로 이뤄지면서 네트워크 경제가 태동하게 되고, 이는 곧 생산-유통-소비의 정보전달이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이른바 ‘생산소비(prosumption)’ 혁명을 가져오게 된다. 수확체증과 한계비용 제로의 속성은 가격·품질 차별화라는 전통적인 기업 경쟁력을 지식형 맞춤경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바로 지금 전자국토 산업공간의 맹아적 형태는 산업 전반의 B2B 확산 움직임이다. 지난 90년대 중반 철강·자동차·전자·국방 등 주요 산업별로 진행된 CALS는 그 단초를 제공했고, 최근에는 인터넷 기반의 공급망관리(SCM)·e마켓 등으로 대중화 단계를 걷고 있다.

 ◇해외에서는=세계 각국이 IT를 기치로 미래 사회의 주도권을 한치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것은 결국 전자국토라는 장기구상을 야심으로 깔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반세기 이상 ‘세계의 경찰’을 자임해왔던 미국은 디지털 경제에서도 팍스 아메리카나가 유효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93년 국가정보기반(NII) 행동계획에서 제조·전자상거래·보건의료·교육·환경감시·전자도서관·행정 서비스 등 7개 응용 서비스 실천전략을 구체화한 뒤, 95년부터는 G7 서밋을 통해 글로벌정보기반(GII) 합의를 도출해냈다. 그리고 지난 96년 차세대인터넷(NGI) 개발계획에 착수한 미국은 일련의 정책을 통해 자국 전자국토에서 세계 전자공간의 국토화 구상으로 넓히고 있다.

 유럽연합도 차기 전자공간 패권경쟁에서는 뒤지지 않겠다는 계획을 최근 잇따라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 93년 ‘21세기를 향한 도전과 전략’ 보고서를 근간으로 역내 하나의 단일한 정보기반 구축과 정보사회 건설을 위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조치를 마련중이다. 이후 94년 ‘유럽과 범세계 정보사회 보고서’, 97년 ‘유럽 전자상거래 실행계획’ ‘본선언’ 등으로 합의점을 도출했으며, 새시대 통신·방송의 융합정책을 공표하기도 했다. 유럽연합은 지역경제 공동체로 통합 서비스 및 네트워크 구축에 강력한 힘을 쏟고 있다. 정보화부문에서는 다소 뒤처졌다는 일본도 최근 들어서는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차츰 전자국토 전략에 눈을 뜨고 있다. 올들어 전자정부 추진계획을 비롯,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21세기 디지털 재팬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이밖에 하루가 다르게 경제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이 지금의 화교경제권을 발판으로, ‘사이버 중화국토’의 야심을 어떻게 현실화할지는 새천년 세계 전자국토 패권경쟁의 판도를 가름할 행보로 각국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