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5주년 특집(3)]IT가 바꾸는 삶-르포, 생산현장을 가다: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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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 하나=과거 25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 전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전기는 ‘일반선’과 ‘특별선’으로 구분돼 있었다. 24시간 전기가 공급되면 특별선, 제한적으로 들어오면 일반선이었단다. 부패하기 쉬운 음식물을 보관하는 냉장고가 특별선만 쓰는 일부 특수 계층에만 보급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이다.

 당시에는 세탁기도 마찬가지. 수도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탓에 세탁조와 건조조로 나뉜 세탁기가 보편적이었고, 빨래를 하려면 일일이 물을 부어 써야 했다.

 사례 둘=옛 군부정권 시절 TV는 일부 부유층이나 가질 수 있었던 고가 제품이었다. 그나마도 흑백 TV가 대부분. 여타 개발도상국보다 더 늦은 1980년대 들어서야 컬러 TV가 보급되기 시작한 까닭에는 정치적 배경도 있었단다. 시청자들이 컬러 TV를 통해 생생한 화질을 맛보게 되면 ‘소비성향’이 강해진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였다. 당시 유일하게 컬러를 제공했던 AFKN 채널을 보며 젊은 이들 사이에선 ‘아메리칸 드림’을 더욱 꿈꿨다는 속설도 있다.

 

 과거 25년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온 국내 가전산업은 이렇게 탄생했다. 한 나라에 가전 제품이 보급되는 추세를 보면 그 곳의 역사를 미뤄 짐작할 수 있는 사례들이다.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던 얼마전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2단지에 소재한 생활가전사업부 가전연구소 소속 생활문화연구기획그룹을 찾았다. 웬만한 연구소와 다를 바 없겠거니 했던 선입견은 사무실을 들어서자마자 깨졌다.

 넓은 사무공간 곳곳에는 미래 사람들의 생활 풍속도를 짐작케 하는 도면들이 군데군데 붙어있다. 외관만 봐서는 냉장고나 세탁기, 에어컨이지만 특수 장치들이 여기저기 붙어있는 이상한 제품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연구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뭔가를 열심히 토론하고 있다. 제품 연구개발(R&D) 조직과는 뭔가 다른 범상한 느낌이 든다.

 “우리요? 의식주를 비롯해 인간의 모든 생활상을 연구합니다. 전 세계 곳곳의 소비자들이 어떤 삶의 패턴을 지니고 있는지, 또한 현재의 라이프 스타일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 지가 주된 관심사지요. 바로 여기서 새로운 미래형 생활가전이 탄생할 수 있는 통찰이 나올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 생활문화연구기획그룹장인 서정건 부장의 설명이다. 과거 우리 경험처럼 가전 제품의 보급되는 추세는 곧, 삶의 역사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미래 생활가전 시장에서는 지금처럼 개별 제품을 만들어 파는 일이 전부가 아니란다. 그보다는 인간의 의식주와 제반 생활 현장을 도와줄 수 있는 토털 솔루션이 필요하단다. 이 곳에서 인간의 의식주를 포함한 삶의 현상을 ‘솔루션’화 할 수 있는 일을 꾸미고 있는 이유다.

 단적인 예로 생활문화연구기획그룹 멤버들은 이미 냉장고를 냉장고로 보지 않는다. 음식을 신선한 상태로 ‘보관’하는 게 현재 냉장고 본연의 임무라면 이들은 미래에는 식자재 구입에서 보관, 조리, 세척에 이르는 식생활 솔루션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신영식 책임연구원은 “비단 식생활뿐이 아니고 ‘의’나 ‘주’도 마찬가지로 솔루션화로 진화할 것”이라며 “앞으로는 가전제품을 더 이상 개별 기능으로 분리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미래 25년을 대비하는 이들에게 최근 가장 큰 관심사는 의식주 외에 인간 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놀이(락)’이다.

 정영주 연구원은 “지금 우리들에겐 의식주만큼 중요한 일이 즐거움”이라며 “지금은 게임기가 그 역할을 맡고 있지만 가전제품의 기능성에도 소비자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기쁨을 느낄 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생활문화연구기획그룹 멤버들은 고작 15명 안팎이다. 이들의 생활이 유별나다고 느낀 대목은 한결같이 “일과 개인 생활의 구분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는 점이다.

 “일은 직장에서 끝내고 쉴 때는 업무를 잊어버려야 스트레스를 덜 받을 것 아니냐”는 질문에 입이라도 맞춘 듯 고개를 젖는다. “사무실에서 일할 때도 보편적인 사람들의 생활을 생각해야 하는 마당에 회사밖에서 생생한 삶의 현장을 느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는 게 서혜원 연구원의 그럴싸한 설명이다.

 이들에게 25년뒤 우리나라 생활가전 산업의 미래를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서한기자@전자신문, h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