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대표적인 암적 존재 ‘마약’. 마약중독자가 사용하면 최악의 약물이 되지만, 의사가 사용하면 ‘모르핀’ 등 고통받는 환자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약이 된다. 같은 것이라도 누가 사용하는지에 따라 용도와 효능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게임도 약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병의 치료와 예방에 사용되는 기능성 게임이 그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게임을 하면서 운동을 즐기는 ‘엑서게이밍’도 최근 급속하게 부각되고 있다.
◇땀 흘리는 게임=엑서게이밍(exergaming)은 운동(exercise)과 게임(gaming)의 합성어로 게임을 하면서 운동을 하는 것을 뜻한다. 엑서게이밍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오락실에는 고나미가 개발한 ‘댄스댄스레볼루션(DDR)’이라는 리듬액션게임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음악에 맞춰 상·하·좌·우 화살표가 올라가면 플레이어가 순서에 맞게 발판을 밟는 게임이다. 이후 국내 개발사인 안다미로가 ‘펌프 잇 업(Pump It Up)’을 출시하면서 오락실은 춤추는 학생과 젊은이로 넘쳐났다. 게임은 앉아서 한다는 상식을 완벽하게 뒤집은 이 게임들의 인기는 그야말로 선풍적이었다.
엑서게이밍의 원조 격인 DDR는 현재 미국 학생들의 비만을 해결하기 위해 공립학교에 보급되고 있다. 게임을 하면서 즐겁게 운동시킨다는 전략이다. 지난 2006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는 55만달러를 투입해 765개 학교에 DDR를 설치해 큰 성공을 거뒀다. 학생들은 체육시간 외에도 게임을 하기 위해 줄을 설 정도였다. 웨스트버지니아주의 성공으로 다른 주들도 게임 도입에 잇따라 나섰다.?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닌텐도 ‘위’와 ‘위핏’도 대표적인 엑서게이밍 상품이다. 특히 위핏은 TV를 보면서 밸런스게임·유산소운동·근력운동·요가 등을 할 수 있어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이처럼 엑서게이밍이 새로운 엔터테인먼트로 자리 잡으면서 관련 산업은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게임 처방으로 치료한다=운동 효과를 넘어 실제로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게임도 개발되고 있다.
비영리연구소인 호프랩이 개발한 소아암 환자 치료용 게임 ‘리미션(Re-Mission)’은 대표적인 기능성 게임으로 꼽히고 있으며, 우리가 흔히 접하는 테트리스도 정신적 외상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게임을 이용해 치료를 하는 사례도 있다. 지난달 계명대 동산병원은 게임과 명상으로 쉽게 즐기면서 뇌를 훈련시켜 질병을 치료하는 ‘뉴로피드백’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뉴로피드백은 게임 방식으로 뇌를 훈련함으로써 자기조절 능력을 향상시키는 등 뇌 기능을 정상화하는 치료법이다.
정철호 동산병원 정신과 교수는 “뇌에 비정상적인 뇌파가 생성되면 집중력 저하, 수면 및 학습장애, 만성피로, 심한 감정변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며 “육체의 건강을 위해 신체운동을 하듯이 뇌 운동을 해주면 정신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뉴로피드백을 통해 비정상적인 뇌파 활성을 억제하고 필요한 뇌파 활성을 정상화시키면 집중력 강화, 학습능력 및 업무수행능력 증진, 각종 중독증 등을 개선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의료·치료 기능성 게임 신시장=닌텐도 위와 위핏의 성공은 게임시장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기능성게임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만들 수 있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닌텐도의 성공으로 일본에서는 요리·뷰티케어·정원가꾸기 등 다양한 기능성게임이 개발되고 있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Brain Computer Interface) 등 새로운 인터페이스 기술의 등장도 기능성게임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그동안 기능성게임 개발에 소극적이던 우리나라 정부와 산업계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말 앞으로 2012년까지 100억원을 투입해 교육·의료 등 기능성게임 개발을 지원해 1000억원의 시장을 창출하겠다는 게임산업 중장기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또 한국게임산업진흥원은 서울아산병원과 함께 소아암 환자를 위한 기능성게임 ‘헬시랜드를 구하라’를 개발 중이다.
김정은 서울대 간호대학 부교수는 “기능성게임에서 게임의 요소란 재미뿐 아니라 시뮬레이션·다자 간 소통·플랫폼·가상현실·자아인지·동기화(motivation) 등 다양한 기술적·인지적 수준의 요소를 포괄한다”며 “특히 의료 분야의 기능성게임은 이 같은 요소들을 총망라해 다양한 형태로 개발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병원이 가정 안으로 들어오는 안방 진료시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돼 u헬스케어 시대가 머지않았다”며 “기능성게임은 이 같은 헬스케어2.0 시대를 한 단계 더 앞당겨줄 수 있는 산업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