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CTO 필요하다](상)끊임없이 이어지는 부처간 불협화음

 지난 17일 열렸던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는 ‘출연연 활성화 방안’이 보고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다음번으로 연기됐다. 산업기술연구회를 담당하는 지식경제부와 기초기술연구회를 담당하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안건 조율이 지연됐기 때문이다. 지경부가 독자 방안을 내겠다고 하면서 조율이 안 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부처는 출연연 운영 방향에서도 엇박자를 낸다. 교과부는 출연연 활성화 방안을 준비하는 반면에 지경부는 산업기술연구회 산하 출연연의 구조조정을 위한 컨설팅을 진행한다. 대통령이 위원장으로 있는 국과위 역시 산업기술연구회에 제목소리조차 내지 못한다.

 

 국가 최고기술관리자(CTO)가 절실하다.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 해체로 인해 국가 미래기술 개발을 주도하는 부처 간 정책 혼선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방통위가 사실상 손을 떼면서 정리되는 듯했던 국가 연구개발(R&D)을 놓고 교과부와 지경부가 2년째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우리나라 R&D 방향을 정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보고 안건을 만드는 것조차 협력이 안 되는 수준이다. 두 부처 차관이 참여하는 대화 채널을 가동하고 있지만 사사건건 마찰을 보이고 있다.

 두 부처는 지난번 국과위에서 보고된 ‘지방 R&D 투자 실태조사’를 놓고 마찰을 빚었다. 당초 공동 실태조사를 하기 위해 교과부 측에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지경부 측에는 한국산업기술평가원 등이 참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경부가 불참을 선언하면서 산기평 등 지경부 소속기관들이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안건도 국과위에 올려 토론할 예정이었지만, 지경부 반발로 보고만 하고 끝냈다. 조사에 참여한 관계자는 “지방 R&D의 90% 정도가 지경부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국과위로서는 지방 기술혁신 또는 R&D 실태를 점검해 문제가 있으면 개선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지경부는 아직 지방 R&D나 지역혁신의 방향성을 정하지 않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국가 차원의 R&D 투자방향 설정에도 문제가 드러났다. 교과부가 추경예산 중 250억원으로 지원하기로 한 모바일 하버 사업은 지경부 지원과제에서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다에 떠 있는 항구가 대형 컨테이너를 실은 선박으로 이동해 컨테이너선이 항구로 들어오지 않고도 하역작업을 신속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다. 지경부 산업원천기술개발사업 기술위원회 심의에서 조선 분야 후보과제 순위 8위에 그치면서 탈락했다. 투자방향과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박영아 국회 교과위 소속 의원은 “평가기준이나 체계적 검증과정 없이 신규과제에 적지 않은 추경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국가예산 낭비”라고 지적했다.

 두 부처가 다투는 사이에 그간 정리됐던 IT산업 정책 관할권 다툼도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지경부는 IT산업 정책 주도권을 놓고 물밑 싸움을 벌이고 있다. 방통위는 지경부가 기존 산업에 치우쳐 IT산업을 내팽개친다고 본다. 지경부는 주관부처도 아닌 방통위가 왜 간섭하느냐고 반박한다. 로봇을 가로 챈 정통부를 향한 산자부의 반감이 우본을 지경부에 빼앗긴 방통위의 속쓰림으로 바뀌었을 뿐, 두 부처의 갈등은 이전 정권 때와 똑같다. 방통위와 문화부는 디지털콘텐츠 정책을 놓고 다툰다. 정보보호를 놓고 행안부·방통위·지경부가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하고 있다. 지난해 말 지경부·방통위·문화부·행안부 4개 부처가 정보통신진흥기금을 공동 관리하기로 하는 양해각서(MOU)까지 교환한 것은 언뜻 보면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실상은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부처 혼선에 대한 산업계의 불만이 폭발하자 급기야 대통령의 IT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IT 전담관 신설 지시로 이어졌다. 하지만 전담관 형태를 놓고 청와대 내부는 물론이고 해당 부처 간에도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현 정권의 화두인 녹색성장에 부처가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도대체 주관부처가 어디인지 헷갈릴 정도다. 부처 이름만 바뀌었을 뿐 정책 주도권 다툼은 과거와 똑같다. 정책기관 간 갈등은 이전보다 표면화하지 않았을 뿐 더 나빠졌다는 시각도 있다. 부처 간 경쟁은 물론이고 부처와 청와대, 청와대 안에도 수석 간에도 업무 중복 문제가 불거졌다. 이제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까지 가세한 상태다.

 국가 R&D에서 손을 떼고 미디어법을 둘러싼 정치싸움에 휩싸인 방통위, R&D 주무부처인 교과부와 지경부의 다툼,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행안부, 문화부 등의 사이에서 국가를 이끌 미래 기술정책은 2년째 부재 중이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