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 "차라리 모의시험소를 만들자"…필수설비제공제도 갈등 새 국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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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가 필수설비제공제도 개정을 위한 현장시험 방법으로 `모의 시험소` 설치 방안을 추진한다. KT와 시험 방법을 놓고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내놓은 새로운 카드다. 더 이상 KT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방통위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어서 필수설비제공제도 공방이 새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 관계자는 5일 “실제 현장 대신 객관적인 조건에서 실험을 할 수 있는 모의 시험소를 만들어 시험하는 방안을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필수설비제공제도란 KT가 보유한 관로·전주·광케이블 등 필수 통신 인프라를 경쟁사도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제도다. 개정안의 핵심은 현재 150%로 설정된 예비율(회선 여유공간)을 135%로 낮추는 것. KT는 방통위가 제시한 135% 예비율이 안정적인 자사 망 운용에 위험을 줄 수 있기 때문에 100구간 이상의 현장 시험을 거쳐 확인해봐야 하며,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등 이용사업자의 설비에도 똑같은 제공 의무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모의 시험소는 `규제기관이 규제 대상 사업자인 KT 주장에 끌려다닌다`는 비판을 받아온 방통위가 이를 무마할 새로운 전략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관계자는 “다양한 인과관계를 상정하려면 현장보다 모형을 만들어 하는 것이 낫다”며 “현장이 적시성이 있겠지만 불필요한 변수가 많은데다 KT가 자사 설비 현장을 지나치게 유리한 쪽으로 선정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통위는 관로가 꺾인 각도나 찌그러진 정도를 비롯해 실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반영한 공정한 모의 시험소 안을 KT에 제시할 계획이다.

KT로선 모의 시험소 대안이 상당히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KT의 공식 방침은 “통보받은 바가 없다”는 것이지만 처음 예비율 135%를 도출했던 방통위 기술검증반보다 더 신뢰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하지만 중립적인 시험소 안이 나온다면 계속 거부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방통위는 더 이상 KT에 양보할 수 없다는 자세다. 방통위 관계자는 “KT가 제시안 방안대로라면 시험을 끝내는 데만 1년이 넘게 걸린다”며 “거기다 자사에 유리한 설비가 아니면 접근 허용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대선 후에는 방통위 존속여부 자체도 불투명하기 때문에 그 전에 끝내야 한다는 주장도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예비율 확대를 주장해온 이용 사업자들은 방통위의 새로운 시험안을 반기는 분위기다. LG유플러스 고위관계자는 “어떻게든 빨리 끝낼 수만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합의를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용사업자들이 이처럼 애타게 KT의 설비를 쓰려고 하는 이유는 B2B 시장 확대를 위해서다. 대부분 도심 빌딩에 위치한 기업들에 유선상품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전주가 아닌 맨홀을 통해야 하는데, 90% 이상이 KT 소유다. 한 이용사업자 관계자는 “KT가 유선시장 점유율 유지를 위해 설비 제공에 소극적”이라며 “현장에서 보고되는 KT의 고압적인 자세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KT는 “사용 요청 자체가 별로 없었다”고 밝혔다.

필수설비제공제도를 둘러싼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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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