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의 소규모 가게부터 대형 백화점까지 모든 유통 업계의 공통된 고민은 고객이 찾는 물품이 부족하지 않게 준비하고 안 팔리는 재고는 어떻게 줄이는가에 있다. 잘 팔릴 것으로 예상한 물건이 인기가 없어 악성 재고가 되거나, 고객이 찾는 물건이 마침 떨어져 발걸음을 돌리는 일이 반복되면 해당 매장은 오래가기 어렵다. 그러나 고객의 속마음을 읽어 어떤 제품이 얼마나 팔릴지 예측하기란 쉽지 않는 일.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한 시도가 최근 있었다. 바로 빅데이터 분석이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 대한상공회의소가 슈퍼컴퓨팅 전문업체인 클루닉스와 약 10억건의 백화점·대형마트·중소유통사 판매정보와 날씨 데이터, 인구통계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흥미로운 내용이 도출됐다.
◇기온·기상의 상관관계
대부분 아이스크림은 한여름에 가장 많이 판매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분석 결과 무더위에는 오히려 아이스크림 매출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온이 20도를 넘으면 빙과류 매출이 늘어났다. 하지만 30도가 넘는 무더위에는 되레 매출이 줄었다. 사람들이 외출을 줄여서다. 또 빙과 대신에 음료수 소비가 늘면서 빙과류 소비 감소를 촉진했다.
한겨울 빙과류 소비와 봄~여름 매출 규모도 비슷하다는 점도 밝혀졌다. 동네 소규모 점포에서는 겨울철에 재고를 확보하고 한여름에는 재고를 줄여야 한다는 뜻이다.
기온변화와 제품 판매는 긴밀했다. 커피·코코아 등의 가공품은 기온이 10도 미만일 때부터 판매량이 상승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기온변화를 유심히 살펴 마케팅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울러 지역 특성에 따라 판매 전략이 달라져야 한다는 점도 확인됐다. 도시지역 슈퍼에서는 즉석식품 등이 잘 팔린 반면에 농촌지역 슈퍼에서는 조미료·라면·두유 등의 판매량이 높았다.
또 동네 슈퍼에서는 대형 유통점보다 저지방 우유가 상대적으로 더 많이 팔리고, 부자 동네일수록 주류 판매량이 감소하는 등의 결과도 나왔다. 저지방 우유의 주소비자는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여성인 경우가 많고 매일 소비되는 특성상 대형 마트까지 가지 않고 가까운 곳에서 신선한 저지방 우유를 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동네 소형 점포에서 매출 비율이 큰 것이다.
◇왜 빅데이터인가
이번 분석은 고성능 하둡 클러스터 서버(HPC)를 사용해 약 2개월간 이뤄졌다. 데이터의 양이 10억건을 넘어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이나 비즈니스 인텔리전스(BI) 툴로는 짧은 시간 내에 의미 있는 분석이 불가능했다. 빅데이터 기술을 통한 숨어 있는 의미의 발견이다.
권대석 클루닉스 대표는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시간상 불가능한 10억건 가까운 데이터의 분석작업을 슈퍼컴퓨팅을 활용해 한 달 남짓한 짧은 기간에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유통 업계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짐작되던 것들을 정량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의의”라고 강조했다.
빅데이터가 주목받는 이유는 ‘예측’에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가까운 미래를 예측한 후 최적의 대응 방안을 찾는 것이 주목적이다. 빅데이터의 이 ‘예측’ 효과 때문에 많은 전문가는 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요소라고 강조한다. 사물에 센서와 통신 기능을 부여해 스스로 정보를 수집하게 하고 다른 기기와 공유하는 ‘사물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 데이터 생산량은 훨씬 늘어나게 될 것이고, 그 속에서 가치 있는 정보 찾기는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빅데이터 기술 발전이 필요하고 주목되는 이유다.
강성주 미래부 정보화전략국장은 “빅데이터를 통해 의미 있는 결과들이 도출됐는데 앞으로도 전략수립 등에 필요한 컨설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정보화진흥원(빅데이터분석활용센터)와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번 결과는 데이터의 창조적 활용을 통해 소규모 자영업자에게 도움이 되는 데이터 기반 서비스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라며 “향후 관련 기관과 협력해 실제 서비스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논의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