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사물인터넷,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ET단상]사물인터넷,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전 세계 인구 약 73억명, 2020년까지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사물의 수 500억개. 세계시장 규모 2000조원. 기대와 흥분 속에 사물인터넷(IoT) 세상이 열리고 있다. 세계 각국이 벌이는 치열한 각축은 총성 없는 전쟁이란 식상한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전쟁 그 이상이다.

이미 2005년 중장기 발전의 핵심 산업으로 사물인터넷을 선정한 중국은 2012년 발표한 5개년 계획에 따라 50억위안(약 8700억원)을 쏟아붓고 있다. 유럽연합(EU)과 미국도 사활을 걸긴 마찬가지다. 퀄컴, 인텔, 구글, 삼성 등 어제의 적이었던 글로벌 기업은 오늘의 동지로 변신하며 서로 컨소시엄을 형성하는 등 사물인터넷 고지 선점을 위해 경쟁하고 있다.

우리는 한때 정보통신기술(ICT) 최강국임을 자랑해 왔다. 그러나 변화의 바람은 거세다. 최고라는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쇠퇴의 급격한 내리막은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추락을 비상으로 바꿔 줄 날개가 절실하다. 다행히 그 답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바로 ‘사물인터넷’이다.

사물인터넷은 기존 ICT와 서비스의 집합체이자 연장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전혀 새로운 세상이기도 하다. 각종 유무선 통신 기술이 자동차, 건물, 도로 등에 스며들게 하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지난해 IDC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물인터넷 준비지수는 G20 국가 중 미국에 이어 두 번째다. 최고 수준의 ICT 인프라와 탄탄한 제조업 기반이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클라우드,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정보보호 등 우리 인터넷 산업은 분야별로 제각각의 방향으로 최선을 다해 뜀박질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개념이 사물인터넷이지만 우리의 준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도록 국가적 역량을 모아야 하는 이유다.

앞으로 3년이 다가올 30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 이제 정부는 물론이고 학계와 기업들이 지금까지 지키고 누려왔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아갈 목표와 방향성을 정립해야 한다. 인터넷 산업과 전통 산업 간 구분도 의미가 없다. 모두가 함께 우리의 실체적 경쟁역량을 점검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실효적 진흥책을 가다듬어 나가야 한다.

특히 사물인터넷은 각 요소가 웅장한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롭게 융화돼야 성공할 수 있는 분야다. 모든 악기가 주연이자 조연으로 큰 그림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할 때 훌륭한 합주가 이루어지듯, 어느 누구 하나의 주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모두 함께 실행해 나가는지가 중요하다.

사물인터넷 보안과 표준화, 새로운 인터넷 주소체계 등 사물인터넷 시대의 패권을 쥐기 위해 지금 우리 앞에는 과제가 산적해 있다.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ITU 전권회의에서도 사물인터넷, 특히 IoT 표준 제정은 핵심 의제 중 하나다. 한국은 ITU 최초로 사물인터넷 의제를 제의했으며 결의안 채택 시 우리의 사물인터넷 발전에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가 가진 사이버보안 침해대응 사례와 경험 역시 사물인터넷 보안에 있어 경쟁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좋은 자산이다.

최근 방한한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사물인터넷을 통해 3차 산업혁명이 촉발될 것이라 내다봤다. 특히 공유경제시대에는 경쟁보다 집단사고가 더 중요하다는 그의 지적은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 크다. 더욱이 사물인터넷 선진국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한국이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의 25%를 사물인터넷 인프라 구축에 투자한다면 성장과 고용에서도 향후 수십 년간 막대한 성과를 거둘 것이라는 조언도 받아들일 만하다.

이제 한국은 사물인터넷산업의 주요 참여국 단계를 넘어 글로벌 선도국가의 저력을 발휘할 때다. 못할 이유는 없다. 체계적인 협력모델만 있다면 말이다. 그 일환으로 정부, 지자체, 전문기관과 각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새로운 형태의 혁신적 협력모델로 ‘사물인터넷 랜드마크 프로젝트’ 추진을 제안한다. 대한민국 곳곳이 교통, 에너지, 의료, 교육, 바이오 등 산업별로 특화된 사물인터넷 테스트베드화된다면 세계 사물인터넷 시장을 선도하며 분명 앞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격언이 있다. 우리의 사물인터넷 전략을 짜는 데 꼭 필요한 조언이 아닐 수 없다.

백기승 한국인터넷진흥원장 ksbaik@kis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