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프로그램은 많다. 지상파 KBS부터 케이블채널 tvN까지 스타 PD들이 만들고, 각 방송사를 대표하는 프로그램들이 존재한다. 여기에 ‘배틀 트립’이 후발 주자로 나섰다. 이미 완성형 예능이 된 타 여행 프로그램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자신 만의 색깔을 찾는 것은 필수조건이다.
지난 16일 KBS2 신규 예능프로그램 ‘배틀 트립’이 베일을 벗었다. 이날 방송에서는 게스트로 그룹 슈퍼주니어 이특-헨리(이하 ‘태양의 후예’ 팀)와 그룹 비스트 윤두준과 스타 강사인 설민석(이하 ‘식史로드’ 팀)이 출연해 각각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인 강원도 태백과 서울 청계천-경복궁을 중심으로 한 여행을 꾸렸다.

첫 술에 배부르긴 힘들지만, 이날 방송은 다소 아쉬운 점이 보였다. 그동안 KBS는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태양의 후예’와 여러 가지 콜라보레이션을 펼쳤는데, ‘배틀 트립’ 역시 드라마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촬영지를 소개하는 정도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이특은 끊임없이 송중기를 언급했고, 심지어 송중기가 나올까 안 나올까 물어보며 시청자들과 ‘밀당’ 했던 것. 이미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 프로그램에서 스페셜로 이런 여행지를 준비했다면 깜짝 선물이 될 수도 있지만, 어떤 프로그램인지 처음으로 소개하는 첫 회부터 다른 프로그램을 이용한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태양의 후예’ 촬영지는 세트장이 이미 철거된 상태로 텅 비어있었고, 결국 ‘태양의 후예’ 팀은 92대 8로 허무하게 지고 말았다. 이들이 진 이유에 대해 태백은 ‘멀다’라는 이유를 표면적으로 내세웠지만, 서울이 아닌 이상 멀 수밖에 없다. 태백이 멀더라도 가고 싶은 여행지로 소개됐어야 했는데, 볼품없는 장소가 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이들이 패한 이유는 ‘식史로드’과 달리 자신의 콘텐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설민석이 꾸린 ‘식史로드’는 ‘배틀 트립’의 색깔을 만드는데 크게 일조했다. 설민석은 풍부한 역사 지식과 함께 마치 친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친근한 화법을 선보이며 정보와 재미를 한꺼번에 선사했다. 그는 청계천에 위치한 돌과 정조 그림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해주며, 평소 지나치기 쉬운 장소를 새로운 여행지로 탈바꿈 시켰다. 여기에 먹방에 일가견이 있는 윤두준이 합세하며 완벽한 팀플레이를 보여줬다.
이에 대해 KBS ‘배틀 트립’ 관계자는 “1회 같은 경우엔 당일치기로 하다보니까 멀리가지 못했다. 일정은 게스트들이 직접 짰고, 설민석 선생님은 실제로 어떤 루트로 돌까 고민을 많이 하시면서 사전 답사를 많이 가셨다. ‘태양의 후예’ 세트장은 현재 철거되어 있는데, 리얼한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이런 부분도 일부러 없애지 않았다. 솔직하게 보여드리고 시청자들은 헛걸음하지 않게 정보를 드리는 게 옳다고 봤다. 물론 방송 상으로는 축약이 된 부분이 있고, 첫 회다 보니까 개선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에 있는 여행지를 하루 동안 다녀오는 포맷 자체는 이미 KBS ‘1박 2일’이라는 간판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1박 2일’과 ‘배틀 트립’은 확연한 달라야 한다. 가장 큰 차이점으로는 ‘1박 2일’이 즐거움을 주는 예능에 치우쳐 있다면, ‘배틀 트립’은 다양한 정보를 주는 예능교양 프로그램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1박 2일’ 외에도 ‘꽃보다 청춘’ ‘신서유기’ 등 다양한 여행 프로그램이 있지만 정작 여행 자체만을 위한 콘텐츠는 부족하다. ‘배틀 트립’은 이 점에 초점을 맞췄고, 마치 가이드북이나 블로그처럼 막차 시간이나 먹거리 가격 등 지금 당장 떠나고 싶어 하는 여행자들을 위한 꿀팁을 소개한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스타가 직접 설계한 루트를 살펴보며 그대로 따라하거나 자신의 취향에 맞춰 수정해 여행 계획을 짤 수 있다.
KBS ‘배틀 트립’ 관계자는 “‘1박 2일’은 버라이어티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여행을 틀로 쓰고 있지만, 흔히 여행하는 방식보다 복불복이나 미션 게임 등이 더 상징성을 띠고 있다. ‘배틀 트립’ 첫 회는 국내 아이템으로 진행하다보니까 소재가 겹쳐 ‘1박 2일’과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해외도 가고, 취미와 관련된 아이템도 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또 다른 차이점으로 그는 “게스트 플레이를 하고, 스튜디오 안에서 대결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다르다. 더 나아가서는 시청자들이 여행 설계자들의 자취를 따라 직접 움직였으면 좋겠다. 장기적으로는 해시태그 등을 이용해 시청자와 우리 프로그램이 서로 피드백을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백종원 레시피를 사람들이 쉽게 따라하듯이 ‘배틀 트립’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여행 안내서가 되길 원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아직 프로그램의 결을 잡아가는 과정이다. 모든 것을 다 보여드렸다고 하기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경험치나 데이터가 생기면 더 다양한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지켜봐주면 될 것 같다”고 당부했다.
이주희 기자 lee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