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 판결 났는데"...'의료기기 광고 사전 심의' 여전

사후 모니터링서 과대·허위 광고 적발시
최장 영업정지 3개월…제재 수위 부담
유통 채널서도 필수로 사전 검증 요구
업계 "명확한 가이드라인 마련 필요"

'의료기기 광고 사전 심의' 위헌 판결 이후에도 현장에선 여전히 광고 사전 검열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해당 업무를 대행하던 의료기기산업협회는 이미 사라진 조항이고, 의무사항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업체들이 느끼는 현장 상황과는 괴리가 크다.

의료기기 관련 과대·허위광고 시 3개월 영업정지 등 제재 수위는 높지만 위반 규정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은 부실하다. '해당 제품을 사용하며 만족감을 나타내는 표정 금지' 등의 조항이 대표적이다.

과대·허위광고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 제시와 위반 시 제재조항에 대한 전반적 손질이 필요하다. 특히 '가전+의료기기' 등 기존에 없던 새로운 융·복합 제품군을 이전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다.

헌법재판소는 8월 말 사전심의를 받지 않으면 의료기기 광고를 못하도록 한 법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위헌 결정 이전까지 의료기기 광고 사전 심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권한을 갖고 실무 업무는 의료기기산업협회가 위탁 진행했다. 그러나 위헌 판결 이후에도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가 사전 심의 업무를 지속하고 있다.

의료기기 광고의 사후관리로 식약처의 관리감독권이 여전히 유효한 상황에서 의료기기 업체들이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광고 사전심의를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협회에 사전심의 요청이 이어지는 이유는 업체 입장에서 사후 적발 시 제재 수위가 크고 적용기준도 모호하기 때문이다. 기존대로 협회의 1차 심의를 받아 일종의 면죄부를 받겠다는 의도다.

실제 현재 의료기기 허위·과장 광고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명확하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식약처는 현재 의료기기 광고 관련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지만, 과거 문제가 된 사례를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더욱이 '의료기기를 착용한 상태에서 만족한 표정 금지'와 같이 주관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모호한 규정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유통 채널에서도 광고 사전심의를 필수로 요구한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의료기기 광고 사전 심의를 받지 않으면 상품 등록도 하지 못한다.

홈쇼핑 업계 관계자도 “위헌 판결 이후에도 광고 사전심의를 받지 않은 의료기기는 판매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판매할 계획이 없다”면서 “혹시 모를 과대·허위 광고 문제가 불거졌을 때 위험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광고 사후 모니터링 과정에서 문제 적발 시 최장 3개월 영업정지까지 받을 수 있다. 제조·판매업체 모두 협회의 사전 검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부 업체는 해당 업무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주관적 부분도 많아 수백만 원의 전문 컨설팅까지 받고 있다.

발광다이오드(LED) 관련 의료 가전을 판매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사전 심의를 맡기면 기기를 사용하며 웃고 있는 모습마저 광고에 사용할 수 없는 실정”이라면서 “1차 심의에서 넘어갔던 부분을 2차 심의에서 지적하는 등 가이드라인도 오락가락해 혼란이 많다”고 토로했다.

취재 과정에서 관련 업체들은 해당 사안에 대한 언급은 물론 자신들의 회사나 제품이 사례로 제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그만큼 업체들이 느끼는 부담감이 크다는 의미다.

의료기기광고심의위원회를 운영하는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관계자는 “헌법재판소 위헌 이후 여러 경로를 통해 의료기기광고 사전 심의가 의무사항이 아님을 알리고 있지만, 의료기기 업체에서 사후관리를 통한 적발 등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협회에 광고심의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어 “의료기기 업체의 요청이 있는 한 협회로서는 광고심의 업무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의료기기 사전 광고 심의가 위헌판결이 났기 때문에 업체들이 참고할 수 있는 식약처의 명확한 광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달라는 입장이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융합의료기기 업체는 유통업체가 광고 사전 심의를 요구해 제품을 팔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심의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 과정이 몹시 까다롭고, 광고 한 편 심의에 길게는 몇 주까지 걸리다보니 제품 출시와 사업에 걸림돌이 된다”고 설명했다.

김주찬 광운대 행정학과 교수는 “유통가에서 업체들에 광고 사전 심의를 요구하는 것은 사기업의 사업적 판단 영역을 사실상 침해하는 것”이라며 “위헌 판결 이후 업계 혼란이 가중된다면 해당 사항에 대한 관계 부처의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방향 제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 정현정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