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최저임금, 전문직 대졸 초봉과 맞먹어… “빚내서 누가 대학가겠나”

출근하는 영국인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출근하는 영국인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영국 정부가 최저임금을 전문직 초임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인상하면서 채용 시장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레이철 리브스 영국 재무장관은 이번 달 공개할 가을 예산안에서 최저임금을 시간당 12.70파운드(약 2만3900원)로, 기존보다 약 4% 올릴 계획이다.

이 금액을 기준으로 하면 슈퍼마켓에서 주 40시간 근무하는 근로자의 연봉은 약 2만6416파운드(약 4965만원)에 달한다. 이는 영국 금융·법률 등 전문직 초임 하한선인 2만5726파운드와 거의 차이가 없다.

최저임금이 '화이트칼라(전문 사무직)' 직군의 신입 연봉 수준에 다다르자 회계·법률·금융업계 기업들은 난처한 입장이다.

채용 컨설팅업체 패트릭 모건의 제임스 오다우드 CEO는 “임금 인상 압박이 커지면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자동화나 해외 이전을 가속할 가능성이 있다”며 “결국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소프트웨어 기업 리그비그룹의 스티브 리그비 CEO는 “최저임금 인상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조치지만, 현재 고용 구조는 오히려 숙련도 낮은 직종이 대졸자보다 더 큰 보상을 받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14년 만에 정권을 되찾은 노동당 정부는 경기 부양과 물가 상승 억제를 명분으로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강하게 추진해왔다. 리브스 장관은 “일하는 국민에게 진정한 생활임금을 보장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기업들은 세금 인상과 신입 근로자 권리 강화 정책이 함께 적용되면서 신규 채용이 위험 부담이 큰 일이 됐다고 반발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최저임금이 대폭 오르면 청년층이 고학력 취득을 위한 학자금 대출을 감수할 이유가 약해져 단기적으로는 소득 격차가 완화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계층 간 간극이 더 커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 금융기관 최고경영자(CEO)는 FT에 “학자금 대출 없이도 바에서 일해 같은 수준의 수입을 얻을 수 있다면, 누가 4만5000파운드씩 학자금 대출을 받으며 공부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원지 기자 news21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