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섭의 카피라잇나우] 마그네틱 미디어→디지털…저작권 침해의 현주소

[김명섭의 카피라잇나우] 마그네틱 미디어→디지털…저작권 침해의 현주소

1990년대, 소위 '길보드 차트'라 불리던 카세트테이프, 비디오테이프, LP판 등 마그네틱 기록매체를 통한 불법 저작물 유통은 국가기관의 대대적인 단속 대상이었다. 이후 2000년대 초반 CD, DVD 등 광매체를 통한 저작권 침해 역시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저작권 특별사법경찰과 경찰청이 합동 단속에 나서면서, 이제는 길거리에서 불법 복제물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그러나 기술의 진보는 새로운 형태의 침해를 만들었다. 초고속 인터넷이 일상이 된 오늘날, 저작권 침해는 더욱 은밀하고 방대한 규모로 온라인에서 이뤄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온라인 공간이 새로운 침해의 무대가 된 것이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이 발표한 2024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오프라인 저작권 침해는 사실상 전멸한 반면, 온라인에서 발생한 침해 사례는 무려 145만 건에 달했다. 이는 모니터링 가능한 범위 내의 수치일 뿐이며,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불법 복제가 음성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2024년 온·오프라인 이용 경로별 불법 복제물 이용량. 사진=한국저작권보호원
2024년 온·오프라인 이용 경로별 불법 복제물 이용량. 사진=한국저작권보호원

이와 같은 상황은 저작권자들이 자신의 창작물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며, 동시에 우리 사회가 디지털 환경에 적합한 권리 보호 체계를 아직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행 저작권법 제136조 제1항은 저작재산권 등 보호받는 권리를 침해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저작권 침해는 원칙적으로 '친고죄'로 분류되어 있어, 저작권자가 직접 고소하지 않으면 형사처벌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로 인해 다수의 창작자들이 피해를 입고도 제대로 된 법적 구제를 받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창작물 보호의 책임이 오롯이 창작자 개인에게 전가되어 있는 현실인 것이다.

문제는 창작이 결코 가볍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음악, 영화, 그림, 글 그 어느 하나도 짧은 시간 안에 손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최근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수많은 제작 인력의 노력, 자본, 기술, 그리고 시간이 집약된 복합 예술 콘텐츠다. 이 작품의 OST를 담당한 가수 겸 작곡가 이재는 데뷔 전 10년간 연습생 생활을 이어오며, 수차례 곡을 쓰고 고치는 과정을 반복했다. 우리가 지금 듣고 있는 한 곡의 음악은 단지 한순간의 결과물이 아니라, 수년간 축적된 노동의 총합인 것이다. 우리가 열광하는 K-콘텐츠는 결코 쉽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플랫폼과 소비자들이 불법 유통 경로를 통해 이를 무단 소비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문화 강국이라 자부하는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대형 영화사조차 흥행 실패로 문을 닫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고, OST 작곡가, 편곡자, 작가 등 '무대 뒤 창작자'들은 생계마저 위협받고 있다. "문화산업이 어렵다", "영화사가 적자로 문을 닫았다"는 뉴스는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일부에서는 저작권 침해의 주요 원인을 외국 탓으로 돌리지만, 정작 국내 제도와 환경이 창작자를 충분히 보호하고 있는지는 냉정히 돌아봐야 한다. 창작자가 자신의 결과물을 지키기 위해 직접 고소해야만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구조는, 세계적 문화 강국이라는 위상과는 거리가 멀다.

저작권 보호는 단순히 개인 창작자의 권리를 지키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콘텐츠 산업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떠받치는 제도적 생명선이며, 문화 강국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기반이다.

디지털 시대의 저작권 침해는 기술적으로는 더 정교해지고, 사회적으로는 더 은밀해졌다. 지금처럼 '피해자가 침묵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구조를 방치한다면, 창작 생태계는 쇠퇴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정부, 민간, 창작자가 각각 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팀처럼 연대해야 한다. 기술적 모니터링 체계는 국가가 주도적으로 강화해야 하며, 온라인 플랫폼은 보다 엄격한 책임을 지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동시에 창작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법적·재정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저작권 보호는 창작자를 위한 것이자,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한 것이다. 문화의 힘이 국력을 대변하는 이 시대, 우리는 그 책임을 함께 져야 한다.

[김명섭의 카피라잇나우] 마그네틱 미디어→디지털…저작권 침해의 현주소

글=법무법인 디케이 김명섭 변호사

이금준 기자 (auru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