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노믹스]<칼럼>"국어를 언어장벽으로 보는 국제재판부 신설 우려"

제대건 미국 변호사
제대건 미국 변호사

지난해 '특허법 일부개정법률안'(번호 1918491)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법률안 내용은 '특허법원 등 특허 관련 소송 담당 법원에 당사자 신청에 따라 영어 등 외국어 변론 및 증거 제출이 가능한 국제재판부를 설치'하는 것이다. 목적은 '국제적 사법접근성을 강화'해 우리나라가 '국제 특허 분쟁 해결의 중심지'가 되고 '특허 분야 활성화'를 하고자 한다고 기술돼있다.

즉, 특허 소송에서 한국어(국어) 사용이 언어적 장벽이라고 인식하고 영어를 대신 사용하게 하면 장벽이 없어져서 우리나라 특허 분쟁 건수가 증가할 것으로 희망하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특허 소송은 절차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각 국가 특허권의 인정 범위는 해당국 영토에만 해당되는 '속지주의'에 의거하고, 국가별 특허 청구항은 그 나라 언어로 작성돼 있으며, 해당국 언어 표현에 기초해 해석된다. 우리나라 특허 소송 대상인 대한민국 특허는 국어로 되어 있으며, 해석도 당연히 국어 문법에 따르게 된다. 영어 사용이 가능한 외국인 고객을 유인하고자 증거 제출 등 절차적 단계에서 영어 사용을 허가한다고 하지만 소송 대상이 국어로 쓰여 있는 것까지 바꿀 수는 없다. 설사 대한민국 특허 청구항이 영어로 번역되고 있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참고 목적일 뿐 청구항의 정본은 국어로 쓰여 있는 것이다. 변론을 영어로 할 수는 있겠지만 변론 주제가 한국어로 쓰인 것을 어떻게 영어로 변론한다는 것인지 짐작하기 힘들다.

◇“특허 활성화는 언어 문제에 달린 것이 아니다”

특허 소송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법원은 미국 텍사스 동부 연방법원(EDTX)일 것이다.

이 법원은 미국 텍사스 주의 시골 마을에 위치해 접근이 굉장히 불편한 편이다. 그러나 지리적 장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텍사스 동부 연방법원에는 해마다 많은 특허 소송이 유치되고 있다. 이 법원이 인기 있는 이유는 △특허 소송의 전문성 △특허권자 친화적인 판결 경향 △빠른 소송 진행 속도 등이다. 텍사스 법원이 외국어, 이를테면 아프리카 언어로 소송을 진행할지라도, 위와 같은 장점 때문에 특허권자는 이 법원으로 갈 것이다. 지리적 장벽이나 언어적 장벽은 특허 소송 유치와는 큰 인과관계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소송은 그 법원을 잘 아는 현지 변호사에게 맡겨야”

특허 소송에서 판사나 배심원 앞에서 소송 내용을 설명하는 변호사는 그 법원 혹은 지역을 잘 아는 현지 출신 변호사에 맡기는 것이 대부분이다. 미국 텍사스 주에서 소송이 있으면 텍사스 지역 언어 사용이 가능한 변호사에게 변론을 맡기고, 중국에서 소송이 있으면 반드시 중국 변호사가 소송을 진행한다. 만약 정말로 '국제재판부'가 신설되면 특허권자나 피고인들은 재판부와 법원을 잘 아는 한국인 중에서 영어 사용이 가능한 변호사를 고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영어가 소송 절차에 사용되는 실익 자체가 크지 않거나 아예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특허 소송을 많이 유치해 특허 산업 활성화를 도모하는 것은 크게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 국어가 장벽이라는 인식은 개선해야 한다. 만약 대한민국 특허 청구항이 영어로 쓰여 있고 영어로 해석된다면 특허권자들은 배상액이 훨씬 많은 영미권 법원으로 갈 것이며, 대한민국에서 특허 소송을 할 필요 자체가 없을 것이다. 국어는 오히려 대한민국 특허 시장을 다른 나라 시장과 구별해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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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건 모건 루이스 미국 특허변호사 daegunn.jei@morganlew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