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R&D 현장을 가다](1)R&D가 국력을 좌우한다

[세계 R&D 현장을 가다](1)R&D가 국력을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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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는 기술전쟁중이다. 각국마다 국가 예산의 상당부분을 투자해 기술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다른 예산은 줄어도 국가 기술개발 예산은 늘어나는 추세이다. 국운을 걸고 주력하는 것이 바로 R&D다. 기초과학에서 상용기술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에 정부가 나서 주도하고 있다.

 기술 초강대국인 미국의 기술개발 예산 증액은 ‘팍스 아메리카’의 전형을 보여준다. 미국 연방정부의 2005년 R&D예산은 전년대비 4.6% 증가한 1321억9000만달러다. 개발분야의 증가율은 7.1%, 기초분야 1.3%, 응용분야 1.2%가 늘었다. 나노기술지원확대 방침에 따라 나노기술 R&D예산은 전년대비 9.8% 증액된 10억8000만달러가 배정됐다. IT기술은 전년대비 2.3% 증액된 22억6000만달러가 배정됐다. 미국은 특히 BT, NT, IT 등 첨단산업분야에 예산을 전진 배치했다.

 ◇미·일·EU, 경쟁적 투자=일본 역시 R&D예산은 3조5785억엔으로 총예산의 7.6%에 달한다. 기술개발의 핵심 부처로서 문부과학성과 경제산업성의 R&D예산이 전체의 80.9%를 차지한다. 경제산업성은 ‘신산업 창조 전략’을 중심으로 한 기술혁신 및 산업경쟁력 강화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영국 역시 R&D에산을 전년대비 5.7% 증액된 97억1000만파운드를 배정했다. 주로 과학과 혁신을 위한 장기투자계획(10년)에 따른 R&D프로그램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핀란드는 전년대비 6000만유로(3.6%)가 증액된 15.9억유로(정부 총예산 대비 4.5%), 독일은 순수 R&D예산을 포함해 전년대비 2.4억유로(2.3%) 증액된 110억8000만유로(총예산 대비 4.3%)를 배정하고 있다. 무서운 기세로 우리나라를 위협하는 중국은 2003년도 기준으로 전년대비 159억3000만위안(19.5%) 증액된 975억5000만위안(총예산 대비 4.0%)을 국가 R&D예산으로 책정했다. 절대규모면에서 2000년 이후 미국이 가장 높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중국이 매년 지속적인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R&D예산 미국의 15분의1=올해 우리나라의 정부 R&D투자(일반·특별·기금)는 총 7조7868억원으로 전년대비 9.9%(7,041억원) 증가했다. 총 예산 대비 4.0% 수준이다. 연구개발 지원부문에서 산업기술분야가 1조9341억원으로 전체 연구개발 부문의 45.4%를 차지한다. 기초연구부문의 예산은 전년대비 18.1% 증가한 1조4611억원으로 R&D예산의 21.7%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의 R&D예산규모는 미국의 15분의 1, 일본의 3분의 1, 영국의 2분의 1, 독일의 1.3분의 1 수준이다.

 또 우리나라의 경우 R&D가 경제성장률에 대한 기여도는 10.9%에 그쳐 미국의 40.2%에 비해서도 크게 낮은 실정이다.

 R&D의 부진은 곧 상용화 기술을 대변해주는 특허에서도 나타난다. 우리나라가 등록한 국제 특허 수는 크게 늘고있는 반면 질적 수준 개선은 이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특허 획득 대부분이 대기업에 집중되고 있어 중소기업과 연구소·대학 등의 대응 강화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특허 국가순위 5위, 기술력지수 8위=한국산업기술평가원(원장 윤교원)의 ‘우리나라 미국 등록특허 경쟁력 분석’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미 특허 등록건수는 지난 94년 943건에서 2003년에는 3944건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이 기간동안 특허 취득 국가 순위도 미·일·독일·대만에 이어 10위에서 5위로 올라섰다.

 반면 특허의 질적 수준을 나타내는 기술력지수는 9위에서 8위로 상승하는 데 그쳐 기술의 질적 보완이 강화돼야 할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력지수는 미 MIT대학이 특허기술의 피인용 회수를 이용해 산출한 것으로 기술의 질적 경쟁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특허기술의 변화속도와 활용기간을 보여주는 기술순환주기는 우리나라가 평균 7.7년으로 조사돼 조사대상 13개국 가운데 가장 짧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우리나라 특허가 원천핵심 기술보다 응용기술 쪽에 치중하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과 일본의 기술순환주기는 각각 10.3년, 7.8년이었다. 독일과 중국도 9.7년, 13.1년으로 우리나라보다 순환주기가 길었다.

 산업기술평가원 우창하 본부장은 “우리나라 특허가 양적으로 많이 성장했지만 특허의 질적인 면, 특히 원천 핵심 기술 관련 특허 획득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며 “대기업 이외에 중소기업과 대학연구소의 특허 등록 활동도 보다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고]글로벌 TOP10 국가 진입을 위한 기술예측활동 강화 - 한국산업기술평가원 원장 윤교원

 프랑스는 한 때 세계에서 정보통신의 강국으로 꼽혔었다. 미국에서도 컴퓨터라는 말이 생소하던 1980년에 이미 프랑스에는 ‘미니텔(Minitel)’이라는 PC통신기반 전용단말기가 전국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고 프랑스인들은 주소검색이나 기차표 예매와 같은 일들을 집안에서 손쉽게 처리했다. 그런데 16년 후,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개관식에 참가한 시라크 당시 프랑스 대통령과 정부 주요 인사들은 멀티미디어실의 컴퓨터가 ‘마우스’라는 것으로 작동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그만큼 프랑스 사회는 미니텔 이상의 정보통신 방식에 둔감했던 것이다.

 이러한 일화는 중장기적인 기술 변화의 예측과 그에 따른 국가 차원의 기술기획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지금 당장 현재의 첨단 기술을 잘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미래에는 어떤 기술이 사회를 주도할 것이며, 그에 따라 국가 R&D 역량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지를 예측하고 판단하는 것은 국가 산업경제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21세기의 현실은 기술개발의 패러다임도 변화시키고 있다. 기술우위성을 강조하는 ‘기술성을 중시하는 기술개발’에서, 이제는 사회변화에서 발생하는 미래수요를 예측해 핵심기술을 개발하는 ‘수요 중심의 기술개발’로 전환되고 있다. 수요중심의 기술개발은 현재 시점에서 시장성에 맞춘 기술보다는 미래의 발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전략기술’ 분야에 중점을 두게 된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국가 R&D기획 능력이 그만큼 요구되는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슈퍼컴퓨터를 사용해도 당장 일주일 뒤의 날씨조차 정확히 맞추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기술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 자연환경의 변화까지 고려해야 하는 중장기 기술예측 활동은 쉬운 과제가 아니며, 예측결과의 정확도와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영원한 숙제이다. 그럼에도 세계 각국은 생존과 번영을 위해 이렇게 어려운 과제를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가면서 미래를 예측하고 새로운 시장에 대비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1월, 2030년까지의 기술예측 조사를 바탕으로 ‘10대 기간기술’을 선정했고, 중국은 이미 2003년에 IT·BT·신소재 관련 ‘21개 국가핵심기술’을 발표한 바 있다. 미국의 랜드(RAND)연구소에서도 향후 미국의 경쟁력을 좌우할 7개 분야를 최근 선정했고, MIT의 ‘테크놀로지 리뷰(Technology Review)’지는 매년 미래기술 10선을 발표하는 등 기술예측 활동이 활발하다. 우리나라도 지난 8월 ‘미래 국가 유망기술21’이 선정되어 기술예측 활동의 걸음마를 시작하고 있다.

 이제까지의 ‘산업기술혁신 5개년 계획’, 수요조사, 기술지도 작성 등의 단계를 뛰어넘어, 장기적 관점에서의 기술예측활동을 강화해 정부 R&D지원제도와 연계된 계획수립이 필요하다. 또 연구개발자금 지원을 통한 민간의 R&D를 유인하는 것 못지않게, 기술예측을 통한 기업의 R&D를 선도하는 활동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제 기술이 경제를 좌우하는 시대다. 기술을 선도하는 국가가 세계경제를 주도한다. 2015년 국민소득 3만5000달러 달성과 ‘글로벌 톱10’ 선진 국가에의 조기 진입은 정확한 기술예측을 통한 미래기술의 선점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