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술금융 늘린다고 금융 개혁 안 돼

정부가 올해 기술금융 공급을 20조원 이상으로 늘린다. 지난해보다 세 배 가까이 늘어난다. 돈이 확 풀리니 기술기업들이 반길 만하다. 하지만 부작용 걱정이 앞선다.

기술금융 공급 확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기술 중소벤처기업이 자금을 원활하게 조달하도록 돕고, 담보와 보증 위주의 낡은 관행에 찌든 금융사를 혁신하겠다는 시도다. 13일 경제부처 대통령 업무보고를 보니 금융 개혁 목적이 더 크게 보인다. 기술 중소벤처 활성화와 금융구조 개혁 모두 바람직한 방향이다. 기술벤처에 돈이 흐르게 하고, 금융사 체질도 바꿔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생각하는 기술금융이 정말 해법인지 의문이다.

정부가 늘리겠다는 기술금융은 엄밀히 말해 기술신용대출이다. 담보와 보증이 없는 기업이 보유한 기술 가치를 평가해 은행이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엄연히 빚이다. 생각지 못한 대출을 받게 됐지만 이자를 물고 언젠가 갚아야 할 돈이다.

은행은 기업 재무성과 달리 기술 가치를 평가할 능력이 없다. 더욱이 정부 압박 탓에 은행마다 기술신용대출 실적 경쟁을 벌인다. 제대로 기술을 평가할 새도 없이 대출이 이뤄진다. 기술 평가 부실과 무리한 실적 쌓기 경쟁이 자칫 대형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정작 대출이 절실한 기존 기술기업을 역차별할 가능성이다. 기술신용대출이 청년 벤처창업과 같은 신생 기업에 몰리면서 기존 기업은 되레 대출난을 겪는다고 한다. 기술신용대출이 급증한 지난해 중소기업 대출이 전년보다 고작 2.8% 늘어난 것이 우연은 아니다. 기술신용대출 확대가 기술 투자 생태계를 망칠 수도 있다. 기술기업이 벤처캐피털, 엔젤투자자, 투자은행(IB) 투자보다 손쉬운 은행 빚에 의존하게 만들 수 있다.

기술금융은 미래 성장 분야를 중심으로 경제와 산업 구조를 혁신할 원동력이다. 그러나 은행 일변도로 가면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 금융 개혁도 되지 않는다. 정부는 은행과 벤처 투자자, 펀드를 연계한 새로운 기술금융 확대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