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4차 산업혁명, 융합만이 살 길인가?

양수석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총연합회 회장
양수석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총연합회 회장

지금 4차 산업혁명으로 온 세상이 난리다. 밀려오는 4차 산업혁명의 파도를 잘 타지 못하면 바다 속으로 침몰한다고도 한다. 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는 초연결 사회다. 사람, 사물, 공간이 서로 연결된다. 과학, 인문, 문화의 장벽이 사라지고 서로 연결되는 사회다. 융합 기술, 융합 학문이 뜨고 있다.기존의 전통 산업도 서로 간의 융합으로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기술(ICT),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과 융합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고 중요한 시점이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것이 드론이다. 기존의 항공 기술과 ICT 기술, 센서 기술 등이 융합돼 하나의 제품이 됐다. 과거 전문가가 아니면 다루기 어려운 비행체가 이제는 어린아이도 쉽게 다룰 수 있는 장난감으로 다가왔다. 그것을 활용하는 서비스 시장도 무궁무진하다. 세계 그룹인 아마존, 구글 등에서 앞 다퉈 드론을 개발하고 있으며, 조만간 서비스 시장에도 진출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드론 제품의 융합에 사용되는 각 기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술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지금 세계 드론 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는 중국 DJI사의 드론을 보면 기술 실상을 알 수 있다. 사용된 항공 기술, ICT, 센서 기술 등은 한국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기술보다 한 단계 아래가 대부분이다. 드론의 가격 경쟁력을 생각할 때 값비싼 고급 기술과 고급 부품이 적용될 수 없음은 당연한 이치다. 중국이 드론으로 세계 시장을 선점한 것은 앞선 아이디어다. 이미 개발돼 있는 여러 기술을 융합하는 창의력이다. 한국의 벤처 기업들도 누구든지 가능한 사업 영역이었다. 그래서 지금 한국의 여러 벤처 기업이 DJI사를 빠르게 따라가고 있다.

지금의 기술로 3세대 드론 기술로 진화해 나가기에는 한계가 있다. 활용 시장을 점점 키워 나가기 위해서는 융합 기술과 함께 그것을 이루는 단위 기술이 더욱 발전해야 한다. 그 동력원이 되는 배터리 기술이 한 단계 발전해야 한다. 사용되는 카메라 센서들이 더욱 가볍게, 더욱 정밀하게, 더욱 싸게 만들어져야 한다. 드론을 제어하고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항공제어 기술은 더욱 발전해야 한다. 요즘 뜨고 있는 AI 기술도 탑재해야 한 단계 진화한 드론이 된다. 드론이 그렇듯이 로봇이 그렇고 차세대 자동차도 그렇다.

융합만으로는 기술이 진화하지 않는다. 융합은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시장을 창의로 만들고 시작할 수 있게끔 하지만 그것을 진화시키지는 못한다. 진화하지 않으면 일시 유행으로 반짝 뜰 수는 있어도 시장을 재창출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제품은 만들지 못한다.

앞으로 벤처, 특히 젊고 작은 기업이 시대 흐름을 포착해 창의 아이디어를 제품화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 DJI, 한국의 알리바바, 한국의 우버 같은 기업이 계속 등장해야 한다. 그리고 특정 기술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는 특성화된 대학 및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등에서 장기 계획에 따라 차근차근 개발해 나가야 한다. 특정 기술의 깊이가 심화되고 첨단 기술화돼야만 그 기초 위에 대한민국의 벤처들이 설 수 있다. 새로운 융합 아이디어로 제품을 만들고 시장을 확장해서 세상을 바꿔 나갈 수 있다.

양수석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총연합회 회장 ssyang@ka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