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규제 개혁의 사각지대 `게임`

[데스크라인]규제 개혁의 사각지대 `게임`

2009년 5월 5일 KBS 1라디오 ‘열린토론’에 나갔다. 주제는 ‘청소년 게임 중독’이었다. 사실 썩 내키지 않은 자리였다. 모름지기 토론은 하나의 이슈를 두고 입장이 갈려야 제맛인데 참석자 면면을 보니 예전부터 게임을 마약으로 취급하는 종교단체와 아동보호단체 관계자 일색이었다. 정작 게임 업계 인사는 없었다

대통령 취임 1주년 평가 토론회에 친박 진영만 나온 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나마 잦은 방송 출연으로 낯익은 아동정신과 전문의 얼굴이 반가웠다. 최소한 학자로서 객관성을 유지하리라 기대했다.

토론은 예상대로 게임을 청소년 유해 물질로 단죄하는 분위기로 달아올랐다. 군대까지 제대한 아들내미가 아직도 게임에 빠져 있다는 어르신 청취자의 눈물겨운 전화 연결 증언이 이어졌다. 토론을 마무리 짓는 시점에서 사회자는 마치 최종판결을 내리기 직전의 판사처럼 “그렇다면 게임에는 순기능이 아예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다른 참석자야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고 그나마 이성적 대답을 기대했던 아동심리 전문의조차 “없다”고 단언했다. 나만 게임의 순기능이 없음을 인정하면 방송은 깔끔하게 끝났을 것이다. 내 차례가 돌아오자 흥분한 상태에서 대충 이런 의미의 발언을 쏟아냈다고 기억한다.

“영화에서 감동을 얻고 연극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듯 게임이라는 콘텐츠 본연의 순기능은 ‘재미’에 있습니다. ‘젖소부인 바람났네’와 ‘워낭소리’가 공존하는 영화처럼 게임도 학습용부터 스트레스 해소용까지 다양합니다. 게임에 순기능이 없다는 주장은 콘텐츠 몰이해에서 비롯된 억측에 불과합니다.”

그날 방송은 열린 토론이 아니라 ‘닫힌 성토의 장’이었다. 게임을 청소년 유해 물질로 단정 짓고 그에 적합한 논리를 펴고 사례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최소한 정신과 전문의는 역기능 우려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순기능이 없다는 비전문 분야의 확정 발언을 삼갔어야 한다.

5년이 지난 토론회 장면이 꽤 생생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당시 토론자 중 한 명이 국민적 인지도를 갖춘 위치에 오른 덕분이다. 게임에 순기능이 없다고 밝힌 아동심리 전문의는 비례대표 신의진 의원이다. 지금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신 의원은 ‘게임중독법’을 발의해 게임 업계 종사자 모두를 좌절에 빠뜨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우선 국정 과제로 규제 개혁을 천명했다. 이 과정에서 자칫 게임 산업의 무분별한 규제가 뒷전으로 밀릴까 우려된다. 게임 산업은 규제 개혁의 사각지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정 시간에 청소년 게임 이용을 강제로 막아 위헌 소송을 눈앞에 둔 ‘셧다운제’는 여성부와 문화부, 두 부처가 시행하는 대표적 이중 규제다. 문화부의 선택적 셧다운제로 단일화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셧다운제가 풀려도 다시 게임 산업을 옥죌 규제가 첩첩산중이다. 앞서 말한 게임 중독법과 함께 매출 1%를 강제 징수하는 ‘게임중독예방법’이 기다린다.

게임의 역기능은 분명히 존재한다. 청소년 보호 필요성도 중요하다. 다만 계층 불평등과 입시 위주 교육이 얽힌 청소년 문제를 게임이라는 희생양만으로 풀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산업의 문제를 해결할 가장 최선의 방법은 사회적 합의에 기반을 둔 자율 규제다. 모처럼 내린 규제 개혁의 단비가 게임 산업도 촉촉이 적시길 기대한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