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기업과 산업을 중심으로 영향을 끼쳤던 첨단 멀티미디어 기술이 이제는 우리의 문화에까지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TV나 영화 제작자들은 사람이 연기할 수 없는 장면이나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세트구성을 디지털 영상으로 손쉽게 처리할 수 있게 됐으며 음악을 작, 편곡하는 사람들 역시 컴퓨터와 키보드 등 간단한 장비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것과 같이 수십가지 종류의 악기소리가 나는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제 예술가들도 더욱 다양한 창작활동을 위해 첨단 전자기술을 공부하고 있으며 특히 젊은층을 중심으로 활발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음악분야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실제 악기 대신 컴퓨터와 키보드 등을 놓고 디지털 방식으로 노래를 작곡하게 된 것은 80년대부터이다. 당시 외국에서 음악공부를 하고 온 사람들이 소리의 마술상자라 불리는 「미디(MIDI)」를 국내에 전파, 대중음악가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확산된 것이다.
미디란 「음악정보를 디지털 신호에 의해 전달하는 방식」을 정의한 규약으로 전자악기 개발업체들이 각 회사 제품들간의 정보를 서로 공유하고 교환할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약속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어떤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한 문서를 특정한 파일로 저장하면 다른 워드프로세서로도 그 문서를 불러올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이같은 미디를 지원하는 기기가 사운드 모듈이며 여기에는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드럼 등 1백28가지 정도의 음원이 내장돼 다양한 전자악기에 채용되고 있다. 또 작곡가들은 사운드 모듈을 단품으로 구매해 노래를 만드는데 이용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일본의 롤랜드사가 개발한 「사운드 캔버스」가 사운드 모듈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최근 국내의 한 중소기업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미디를 지원하는 사운드 모듈을 개발해 롤란드의 사운드 캔버스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이 회사가 개발한 사운드 모듈의 이름은 「소리샘」.
이 제품은 「메이드 인 코리아」를 과시하듯 국악음을 내장한 것이 특징이다. 기존 음원들은 외국에서 개발된 것이 대부분이어서 서양악기 중심으로 음원이 내장됐지만 이 제품에는 기존 음원에다 북, 징, 꽹가리, 거문고, 아쟁, 태평소 등 11가지 국악기에서 나는 24종류의 소리를 추가시켜 더욱 다양한 노래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또 「소리샘」은 디지털신호처리기(DSP)를 탑재한 디지털 이펙터를 내장, 외국 제품보다 성능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존 외국 제품들은 입력된 소리를 다양한 형태로 조작하기 위해 코러스, 리버브, 딜레이 등의 기능을 사용하지만 비오의 「소리샘」은 여기에 디스토션, 로테이터, 페이저 등의 기능도 지원해 소리를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비오가 이 제품을 개발하게 된 동기는 아주 단순하다. 「일제 롤랜드 제품의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오의 김형갑 책임연구원은 『국산 전자악기에 일제 음원이 탑재됐다는 것도 자존심이 상했다』며 『사운드 모듈을 국산화하면 우리 고유의 소리를 찾을 수 있어 수입 대체효과는 물론 국내 전자악기산업에 커다란 파급효과를 줄 것으로 보여 막대한 투자를 해가며 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95년 9월 완성된 이 제품은 그해 산업기술 혁신상 대통령상을 수상했으며 여기에 용기를 얻은 비오는 제품 양산체제에 들어가 지난해 말부터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제품은 또 최근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신기술인증서인 「NT마크」를 받기도 했다.
미디개발팀 신현철과장은 『사운드 모듈은 대기업들도 개발을 주저할 정도의 최첨단 기술이 필요해 힘든 점도 많았지만 정부에서도 기술을 인정할 정도의 제품을 완성했다고 생각하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현재 비오는 이 제품의 모델을 다양화해 국내 전자악기업체, 노래반주기 업체, 사운드카드 업체, 작곡가 등을 대상으로 영업을 벌이고 있으며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 개척에도 나설 계획이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