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강력한 코스닥 및 벤처 활성화 대책 발표에도 불구, 벤처투자시장이 여전히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창투사·신기술금융사·벤처투자조합 등 벤처캐피털들이 6개월째 투자를 자제하고 있다. 기관투자가와 일반법인, 개인들들도 지극히 소극적인 투자로 일관하고 있다.
우량은행을 중심으로 한 은행권이 힘겹게 투자를 주도하고 있지만 벤처업계의 「돈가뭄」을 해갈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전문가들은 『벤처투자시장 냉각은 단순한 금융시장 불안 때문이 아니라 여러가지 구조적인 문제가 맞물려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이 문제가 풀리기 전에는 벤처투자시장이 되살아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불안한 거시경제=하반기들어 벤처투자시장이 더욱 냉각되는 것은 거시경제의 영향이 적지않다는 것이 업계의 진단이다. 상반기까지만해도 우리 경제의 기반(펀더멘털)은 양호한 것으로 분석됐으나 최근들어 경기하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반도체와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는 경기침체 현상이 뚜렷하다. 여기에 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올해 말께 배럴당 40달러선을 웃도는 「오일쇼크」까지 우려되는 등 거시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금융시장의 불신=벤처투자시장 냉각의 근본적인 원인은 금융시장에 대한 불신이라는 지적이 많다. 은행·투신·종금 등 금융권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문제가 매듭을 풀지 못한 채 그대로 방치돼 시중자금이 갈길을 잃고 배회하고 있다. 벤처투자는 위험이 상대적으로 커 시장불안의 여파가 더욱 심한 상황이다. 특히 금융시장의 불안은 벤처캐피털 등 벤처투자기관의 재원을 고갈시켜 총체적인 투자경색을 부채질하고 있다.
◇M &A 역풍=벤처투자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화두로 떠오른 것이 인수합병(M &A)이다. 자금난을 겪고있는 벤처기업에 긴급자금을 수혈, 숨통을 열어주자는 것. 그러나 벤처업계가 총체적인 자금난을 겪으면서 일부 벤처투자회사들이 투자회수가 유리한 우량기업을 손쉽게 확보하기 위해 투자를 자제하는 역기능이 나타나고 있다. 즉 자금시장이 냉각될수록 M &A 비용은 더 낮아질 것이기 때문에 투자를 억제한다는 논리다.
◇벤처수급 불균형=벤처 붐이 너무 단기간에 조성되고 경쟁적 벤처투자가 단행되면서 이제는 투자할 만한 매력을 지닌 업체가 줄어든 것도 원인으로 풀이된다. 벤처캐피털을 비롯해 투자기관은 늘어나는 데 반해 유망 벤처창업은 줄어들어 수급이 맞지 않고 있다는 것. 이에따라 투자기관들이 지방으로 향하고 있지만 대덕 등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유망 벤처기업 발굴에 한계를 드러내 「투자할 만한 업체가 고갈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불투명한 정책=현재 금융시장과 벤처투자시장 냉각이 지속되는 것은 정부 정책의 불투명성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금융구조조정이든 구조재편이든 정부 정책에 대해 투명하게 방침을 세우고 일관성 있게 추진하지 못하는 것이 전반적 시장불신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얘기. 벤처캐피털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사태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임시방편식 대응에 주력하고 있다』며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정확한 접근을 통해 근본적인 처방부터 다시 내리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