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 더 뉴스>조환익 KOTEF 초대 사무총장

 

 “이젠 기술에도 횡적인 네트워크화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성공의 키워드가 집중과 분산에서 협력과 조화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한국산업기술재단은 곳곳에 흩어져 있는 기술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조환익 한국산업기술재단(KOTEF) 초대 사무총장(51)은 특유의 날카로운 분석력과 촌철살인하는 비유법을 동원하며 산업기술재단의 좌표를 명쾌하게 제시한다.

 “쉽게 말하면 정부와 업계, 연구계, 학계의 가려운 곳을 잘 긁어주는 것이지요.”

 평소 싱겁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유머감각이 풍부한 그답게 덧붙이는 한마디를 잊지 않는다.

 “그동안 많은 정책을 입안하고 수행하면서 아쉬웠던 점이 참 많았습니다. 정부는 업계나 학계가 진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나무랐고 업계나 학계는 정부 정책이 현실과 맞지 않고 예산도 태부족하다는 불만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최선보다는 차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조건 아래서 최적의 해법을 찾아내겠다는 긍정적인 생각과 의지가 서로에게 필요합니다.”

 그는 주위를 두번 놀라게 했다. 산업자원부 차관보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때와 지난 8월 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으로 취임했을 때다.

 조 총장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산업자원부에서도 가장 촉망받는 인재였다. 요직중의 요직인 차관보로 큰 활약을 하던 그가 불현듯 옷을 벗어던졌다. 이유인즉슨 인사적체로 인한 후유증이 심각하다며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였다. 산자부는 당시 그의 돌충행동에 대한 충격과 그의 깊은 뜻에 대한 칭송으로 떠들썩했다.

 지난 8월 그가 신생단체의 사무총장 자리에 취임했을 때도 주위에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주변사람들은 한결같이 그의 명성에 비추어 번듯한 자리에 앉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한국산업기술재단은 제가 차관보에 있을 때 발족한 신생 단체입니다. 공직으로 있을 때 못다한 일들을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산업의 근간/은 기술과 인력입니다. 지금 사회적으로 국내에는 R&D자금이 턱없이 부족하다, 인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높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R&D자금이 절대량에서는 선진국에 뒤지지만 비율면에서는 결코 뒤떨어지지 않으며 인력도 남아도는 게 실상입니다. 문제는 자금과 인력이 적재적소에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첫 작품은 공과대학 교수를 산업현장에 투입시키는 작업이었다.

 “동안 산학연 협력활동이 개별 대학과 개별 기업단위로 산발적으로 이뤄져 오다 보니 허점이 많았습니다. 재료기술이 필요한 기업에게는 제어기술이 뛰어난 대학과 연결돼 있거나 그 반대인 경우도 많았지요. 기업현장의 수요와 각 공과대학별 전문인력을 적기에 연계해 주기 위한 네트워크 구축이 절실한 셈이지요.”

 조 총장은 현재 2000여 공과대학 교수들의 연합체인 대학산업기술지원단(UNITEF)과 ‘전략적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대학의 전문가 인력풀을 체계적으로 기업에 공급하는 일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국내 기술인력 양성은 산업현장과 괴리가 큽니다. 그러다 보니 산업현장에서 요구하는 기술인력을 제때에 배출하지 못할 뿐더러 재교육에 시간과 비용이 허비되고 있지요.”

 그는 두번째 과업으로 현직 CEO의 대학출강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배출되는 기술인력은 남아돌지만 정작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인력은 모자라는 모순된 현실을 타파하겠다는 각오다.

 “모두들 좋아해요. 이번 일을 하면서 들었지만 각 대학에서도 산업현장에 종사해본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하더군요. 예상보다 반응이 좋아 저도 기쁩니다. 아마 서로에게 보람된 일이기 때문일 겁니다.”

 조 총장은 공직시절부터 부분보다는 전체를 바라보는 균형잡힌 시각과 예리한 분석력으로 정평이 났다. 현직 CEO 대학출강은 중소기업들에게는 큰 혜택이 없을 것으로 판단, 중소기업 기술인력난 해소를 위해 또다른 사업을 펼치고 있다.

 “유능한 기술인력들은 중소기업을 기피합니다. 돈도 돈이지만 주거환경이나 자녀교육 등 모든 면에서 지방에 소재한 중소기업들이 만족시켜 주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중소기업이 튼튼해야 산업이 강해지는 만큼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는 이 문제는 구조상 신규인력 채용방식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만큼 차선책으로 퇴직한 기술인력 풀을 구성해 중소기업을 지원해주는 제도를 정착시키려 하고 있다.

 “갈수록 노령화가 재촉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많은 노하우를 터득한 퇴직 기술인력은 돈이나 자녀교육과 같은 부담을 느끼지 않고 중소기업에서 역량을 맘껏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겐 보람있는 노후생활이기도 하고요.”

 퇴직후의 소감을 묻는 질문에 “땅을 밟고 사는 기분”이라고 싱긋 웃는다.

 “전에는 잘 몰랐는데 모자(공직자의 직위)의 무게가 정말 무겁다는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부처를 바라보아도 사무관이나 서기관만 보이고 그 위로는 아예 처다보지도 못할 지경입니다.”

 공직자로서는 최고위직인 1급까지, 그것도 남들보다 빨리 올랐지만 촌철살인하는 재담은 여전하다.

 “사람은 올라 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후배들에게 추한 모습은 보이기 싫습니다. 이 자리에서도 부처 후배들에게 기대기보다 직접 현장을 발로 누비며 결실을 맺고 싶습니다.”

 공직자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비판정신이 강했던 그이기에 28년간의 공직생활을 떠난 그는 “글을 많이 쓰고 싶습니다. 공직생활중에 다 못했던 하고 싶은 말을 실컷 해보고 싶어서요”라고 서슴없이 밝힌다.

 이미 각 매체를 통해 산업현장에 대한 깊은 애정과 신랄한 비판을 담은 그의 글을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는 포부를 묻자 “남은 욕심이라면 국내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기술과 산업을 긴밀하게 연계시켜 한국 제조산업의 경쟁력을 굳건히 지켜나가는 것”이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산업자원부에서 보기 드물게 산업정책국장직을 두번씩이나 거친 그답게 공직을 떠나서도 여전히 산업전사로 남아 있기를 원하는 산업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을 다시한번 느낀다.

△50년 서울 출생 △73년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81년 미 뉴욕대 경영대학원 석사 △73년 제14회 행정고시 합격 △75년 특허청 행정사무관 △84년 상공부 미주통상과장(서기관) △93년 대통령 경제비서실(부이사관) △95년 통상산업부 공보관 △96년 통상산업부 산업정책국장 △ 96년 통상산업부 산업정책국장(이사관) △97년 미 국제전략연구센터 파견근무 △98년 경수로업지원기획단 파견근무 △99년 산업자원부 무역투자실장(관리관) △2000년 산업자원부 차관보 △2001년 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

<유성호기자 sh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