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강에 도전한다](12)PC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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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쇄회로기판(PCB)산업이 세계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는 가운데 한국 PCB 산업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대덕전자가 미국 산미나와 비아시스템스, 일본의 이비덴과 CMK 등 선진국 기업들이 독차지해 온 초일류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칼을 빼 들었다.

 특히 30주년을 맞은 대덕전자는 올해를 시발점으로 세계 최강으로 손꼽히는 일본의 이비덴과 어깨를 겨누기 위해 다층기판의 사업고도화 전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해를 기업의 사활을 건 전환점으로 삼겠다는 각오다.

 세계 PCB 산업 환경이 2000년 말 이후 그 어느 때보다 급변, 세계 최강의 업체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세계 PCB 시장은 2000년 430억1600만달러에서 지난해 345억4800만달러로 곤두박질쳤다. 이에 따라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유수 업체들이 도산하는 등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세계 IT산업의 중심인 미국 통신장비 업체 부진으로 북미의 PCB 생산규모가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되는 등 시장 전망이 워낙 불투명한 관계로 ‘빅3의 법칙’이 실제 적용돼 머지 않아 극소수 업체만 살아남을 것이란 예측이다.

 또 중국이 세계 전자산업의 제조공장으로 부각되면서 생산시설 기반 확보에 나서는 등 전세계 PCB업계의 초점이 중국으로 몰리고 있다. 적어도 중·저가 제품분야에선 세계 PCB 산업의 무게 중심이 미국과 일본에서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어 기술 집약적인 제품에서 승부수를 던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그간 세계 최대 PCB 업체로 평가됐던 미국의 산미나와 비아시스템스가 IT산업의 부진으로 매출 규모가 대폭 축소, 지난해 일본 이비덴과 CMK에 각각 1위와 2위 자리를 내주고 3위권 밖으로 물러나는 등 세계 시장 구도가 급속도로 재편돼 영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따라서 2000년 세계 12위였던 대덕전자는 이같은 세계 시장 환경의 격변을 기회로 삼아 이른 시일내 세계 최강의 반열에 올라설 계획이다. 특히 패키지 기판 시장에서 최대 경쟁대상인 이비덴의 1위 자리 공략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지난해 일본 이비덴의 총매출은 1131억엔(패키지 기판 매출 약 730억엔). 대덕전자는 지난해 2934억원을 기록, 이비덴의 4분의 1수준에 그쳐 절대 열세에 있다. 대덕전자의 종업원도 약 950명으로 이비덴의 절반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렇지만 대덕전자는 이러한 수치에 기세가 눌려 이비덴과의 진검 승부를 벌이는 데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과거 대덕전자가 일본의 기술종속 업체로 PCB를 생산해왔지만 지금은 대등한 기술력을 보유함으로써 일본업체들을 긴장시키는 등 자신감에 차 있기 때문이다.

 대덕의 전략은 반도체의 고밀도화와 더불어 소형화·고속화·고주파화에 따른 고성능 기기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고밀도 배선 내지는 고밀도 실장에 적합한 고기능의 통신장비용 고다층 PCB·빌드업 PCB·패키지 기판 등 다층기판과 같은 차별화된 제품에서 승부를 거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고밀도 통신용 기판의 기술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통신기기의 고속화·고주파화 진행에 대응하기 위해 저유전율 자재를 사용한 다양한 신제품과 차세대 제품인 임베디드 패시브(Embedded Passive) 제품에 대한 개발에도 경영 자원을 집중할 계획이다. 임베디드 패시브 기판은 저항·콘덴서 등 기능이 기판 내부에 내장돼 세트제품의 초소형화에 적합한 제품으로 PCB 업체의 핵심 능력을 평가하는 주요 잣대로 주목받고 있다.

 이같은 연구 개발 노력으로 대덕전자는 30㎛의 패키지 기판 개발을 완료, 향후 이를 양산에 적용하기 위한 계획을 추진 중이다. 또 통신기기용 기판의 고다층화가 급진전됨에 따라 40층짜리 제품 개발을 완료,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양산에 들어가는 동시에 50층 제품 개발에도 착수하기로 했다.

 특히 빌드업 기술의 접목으로 인해 패키지 기판의 기술적인 난이도가 높아짐에 따라 대덕전자는 이러한 기술 집약적인 고부가 제품에 핵심 역량을 집중, 이비덴과의 정면 승부를 펼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그동안 소규모 생산 수준에 머물렀던 칩세트용 플립칩(Flip Chip) 제품을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양산키로 했다. 이 제품은 반도체에 버금가는 것으로 초미세패턴·빌드업·볼그레이드어레이(BGA) 설계기술 등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이비덴은 세계 기판 시장에서 왕 중의 왕으로 주목받고 있는 업체다. 일본 산업정보조사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패키지 기판 시장에서 739억엔의 매출을 달성, 일본 시장의 64.5%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돼 거대한 시장 지배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 일본 리서치 기관인 NT인포메이션에 따르면 2000년 매출 4위(10억9300만달러)였던 이비덴은 IT 불경기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미국 업체의 부진을 틈타, 지난해 1위로 급부상하는 등 PCB 산업 경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이같은 지속 성장의 견인차는 뛰어난 빌드업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비덴은 패키지 기판의 80%, 일반 다층인쇄회로기판(MLB)의 40%를 빌드업 공법을 이용함으로써 원가절감의 효과와 함께 고품질 제품 양산체제를 갖추고 있다.

 특히 올해 10조엔을 들여 필리핀 공장의 패키지 기판 생산 능력을 2배로 늘리기로 하는 등 가격경쟁력 제고를 위해 동남아시아와 중국 등 해외 8곳의 생산라인을 적극 활용, 대덕전자 등 후발주자들의 시장 공세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1위 자리를 호락호락 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비덴은 또 ‘이비테크노(IBI-TECHNO)의 고도화’라는 슬로건을 갖고 시장 요구를 정확히 파악, 고객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보다 빨리 개발해 미래 시장을 선점한다는 수성 전략을 수립해놓고 있다. 특히 2004년까지 전층이 빌드업 구조이면서 회로선폭 40㎛·랜드 150㎛인 제품과 임베디드 패시브 기술도 상용화할 계획이다.

 다층기판 시장의 최강 자리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펼치기 시작한 대덕전자와 이비덴의 행보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대덕전자 김정식 회장

 대덕전자 김정식 회장(74)은 PCB 업계의 거목이라 할 수 있다. 김 회장이 72년 대덕전자를 설립, 산업용 양면 기판사업을 시작했을 때 모두들 무모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70년대 당시 기술은 물론 경험도 없었던 데다 ‘만들어도 물건을 팔 수 있는 시장’이 국내에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회장은 일본과의 기술협력을 통해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품질 개선에 주력하는 등 그야말로 척박한 땅에 산업용 PCB의 씨앗을 심었다. 김 회장은 “완전히 무에서 시작, 유(수요)를 창조하는 심정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특히 1980년께 대덕전자는 서울 염창동에서 안산으로 새둥지를 마련, 시설을 현대화하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다층 기판을 개발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에 따라 그는 “세계 시장에 진출, 대덕전자가 자력으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이후 급속하게 변화하는 정보통신기기용 기판을 중심으로 수출시장 개척에 주력하면서 세계 20위권 반열에 대덕전자의 브랜드를 당당하게 올려놓았다. 고다층PCB·빌드업PCB·패키징기판 등 제품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올해 30년째 대덕전자를 이끌고 있는 김 회장은 “30년전 창립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를 정점으로 IT산업에 거품이 빠지면서 매년 탄탄대로를 달리던 대덕전자가 지난해부터 혹독한 시련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저렴한 인건비와 첨단 기술을 도입한 중국업체들이 대덕전자의 뒤를 바짝 추격해오고 있어 대응책 마련이 지상과제”라며 “이를 위해 기술력 강화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프런티어 정신이 그 어느때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 이비덴 요시푸미 이와타(Yoshifumi Iwata) 사장

 요시푸미 이와타 사장(63)은 지난 62년 평사원으로 이비덴에 입사, 99년 6월 사장으로 취임함으로써 이 업계의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엔지니어 출신이면서도 탁월한 경영 마인드와 선행 기술을 미리 예지하는 고감도의 감각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세계 IT 경기의 침체기에 들어간 시기에 사장으로 취임, 2년만에 세계 PCB 시장에서 이비덴을 1위 기업으로 올리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요시푸미 이와타 사장은 리딩 컴퍼니가 되기 위해선 신기술과 세계 시장에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는 ‘이비-테크노’ 경영론을 적극 펼치고 있다. 그는 이 경영론을 뒷받침하는 3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고객을 항상 우대하고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글로벌화를 위해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것.

 그는 “수년간 축적된 기술을 강화하고 통합함으로써 혁신적이고도 독창적인 이비덴만의 기술을 보유, 개발형 기업으로 사업을 유지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요시푸미 사장은 신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향후 선보일 것으로 예측되는 새로운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 이비덴의 입지를 한층 고도화하기 위해 도전 정신을 체득하고자 ‘가속(Acceleration)’을 키워드로 채택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는 납기일 준수 등 현지 고객의 요구와 산업 환경에 즉각 대응하는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TPM(Total Productive Maintenance) 프로그램을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비덴의 글로벌 경쟁력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그는 기대하고 있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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