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남민우 다산네트웍스 사장(2)

 지난 1997년 말 찾아온 IMF 위기 당시 사업을 하던 분들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한 순간에 모든 영업활동이 중단되다시피 했고,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환율로 외환 송금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멀쩡한 기업들이 부도 아닌 부도 상태에서 생존을 위한 돌파구를 찾느라 아우성이었다. 다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산은 그때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개발툴인 실시간 상용 운용체계(OS)를 실리콘밸리의 마이크로텍이란 회사로부터 수입,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의 통신장비 개발연구소에 공급하고 용역개발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오던 이 사업도 IMF로 인해 큰 위기를 맞았다. 환율 때문이었다.

 100만 달러에 달하는 소프트웨어 판매대금을 달러로 바꿔서 송금을 해야 하는데 환율이 두 배로 뛰는 바람에 송금할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20여명이 연매출 30억원을 올리던 시절의 회사살림 규모에서 신용을 지키겠다고 회사가 가진 모든 현금을 선뜻 털어서 송금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송금하고 난 후 회사의 앞날이 어찌 될 것인지 불 보듯 훤했다. 그렇다고 그저 앉아서 환율이 제자리로 돌아가기만을 고대할 수도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상황에서 다행히 미국의 파트너 회사인 마이크로텍사가 한국의 돌발적인 상황에 대해 약간의 동정심을 느꼈는지 상환기간에 대해 어느 정도의 여유를 주겠다는 언질이 왔다. 상환기간이 조금 연장돼 다행스러웠지만 우리의 고객사들도 신제품 개발이 중지된 상태라 20여명의 식구들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서 돈을 갚고 먹고 살아야 할지 정말 막막했다.

 이듬해 1월, 나는 상환자금의 기한연장을 협의하기 위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던 파트너 회사인 마이크로텍을 방문했다. 당시 초토화된 한국경제와는 달리 미국의 실리콘밸리는 인터넷 산업과 IT경기의 호황으로 고급기술 인력이 모자라 인도로부터 많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을 수입하고 있었다.

 마이크로텍사의 문을 열고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가슴과 머리가 뻥하고 뚫리는 것 같았다. 회사 엔지니어가 백인보다는 인도 및 아시아계가 훨씬 더 많은 모습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던 고민에 대한 답을 얻게 된 것이다.

 나는 마이크로텍의 사장을 만나 한국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이해를 구했다. 그리고 6개월의 상환기한 연장과 더불어 우리 회사 엔지니어를 내가 직접 이곳으로 데리고 와서 개발용역 일을 하겠다고 제안했다. 평소 다산의 기술력에 대해 높이 평가하던 담당자와 사장은 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이것으로 다산은 다시 기사회생의 기회를 갖게 됐다.

 이에 따라 지난 1998년 3월에 나는 12명의 엔지니어와 함께 실리콘밸리로 건너가 마이크로텍에서 좋은 조건으로 일을 하게 됐고, 동시에 미국 회사의 시스템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IMF 상황이 아니라면 결코 시도해 보지도 못했을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 몸소 체험하며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당시 실리콘밸리는 나에게 또 하나의 기회를 주었다. 시스코·이베이와 같은 많은 IT 신생기업을 접할 수 있게 됐고, 그들의 새로운 제품과 비즈니스 모델을 접해 볼 수 있었다. 또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털 같은 새로운 개념들을 배울 수 있는 아주 좋은 현장실습의 시간이었다. 지금의 다산네트웍스가 주력하고 있는 제품들은 모두 이때의 경험이 밑거름이 된 것들이다. IMF라는 특수한 상황이 나를 실리콘밸리로 향하게 했고, 사업의 대전환을 가져오게 한 특별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nam@da-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