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바꾼 아이디어/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 지음/안정희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인류 문명의 역사를 바꾼 ‘아이디어’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밀레니엄’ ‘문명들’ ‘음식’ 등을 저술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저명한 역사가인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의 신간 ‘세계를 바꾼 아이디어’는 이러한 질문에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다.
인류 역사를 ‘아이디어’라는 키워드로 살펴본 이 책은 기원년 3만년 전부터 현재까지 인류 문명을 변화시켜 온 178가지 아이디어의 역사를 학문적 근거에 바탕을 둔 탄탄한 설명으로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대부분의 역사적 변화는 아이디어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아이디어는 물질적인 위기, 경제적 필요, 환경상의 제약 등 다른 모든 것만큼이나 강력한 변화의 원동력이다.”
저자는 아이디어를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변화 원동력 중 하나로 평가한다. 이 책에서 다룬 아이디어는 인간이 다른 인간을 잡아먹을 수 있다는 ‘식인’이라는 다소 황당한 아이디어에서부터 우주의 질서·내세·금기·국가·삼위일체·무의식·계급투쟁·상대성 이론·카오스이론 등 인간 정신 발전의 대장정에서 생산돼온 중요한 관념들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예컨대 ‘식인’행위라는 아이디어는 50만년 전에 이미 행해졌을 만큼 보편적이었다. 식인 행위가 축제 등에서 이루어졌음을 남아 있는 ‘골편(骨片)’ 등으로 알 수 있다. 우리는 식인 풍습을 인간 이하의 야만적 행위로 보나 역사적 증거들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행위임을 보여준다. 식인종들은 자기 변신과 힘의 계승 등을 위해 윤리적이고 미학적이며 정신적인 목적에서 사람을 먹었다는 얘기다.
저자는 서구 지식인들이 흔히 범하는 ‘서구 중심주의’를 탈피하기 위해 고고학과 문화인류학의 연구 성과의 도움을 받아 문자 등장 이전 선사시대의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고대인의 삶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원주민들의 아이디어에 담긴 지혜를 재평가했다. 특히 서구 고유의 것으로 오해받는 과학의 기원이 중국의 도교적 사유 속에 있음을 밝힘으로써 인간 정신의 장대한 역사가 서구의 독점 상품인 듯 믿는 사람들의 오류를 바로 잡는다. 이를 통해 선사 시대와 비서구 사회가 아이디어의 역사에서 차지해야 할 정당한 영광을 되돌려줘야 한다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이래 축적된 아이디어 중에는 다른 종족을 모조리 말살시켜야 한다는 ‘대량 학살’과 여성을 착취해도 좋다는 ‘성차별주의’, 타고난 열등 인종이 있다는 ‘과학적 인종주의’ 등 세계를 폭력과 전쟁, 자멸의 길로 몰고 간 아이디어들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부정적인 아이디어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지 않는다. 이러한 부정적인 아이디어들도 단지 ‘문화적 다원주의’ 같은 긍정적인 아이디어들과 같이 역사적으로 생성된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또 일견 긍정적으로 보이는 아이디어들 속에 함축돼 있는 부정적인 아이디어의 실마리도 냉정하게 드러냄으로써 역사가 가진 아이러니한 속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정치·사회·경제적 문제와 관련된 아이디어뿐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아이디어들을 다룬다. 특히 신화적 아이디어에서부터 첨단 과학의 아이디어까지 인간이 만들어 온 아이디어들을 총망라한 이 책은 항목별·시간 순서별로 알기 쉽게 정리해 놓음으로써 인간 정신의 역사와 그 발전 과정을 조명할 수 있게 해준다.
이와 함께 철학·역사학·신학·미학·고고학·인류학·심리학·수학·화학·생물학 등 인간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인 학문의 기원·배경·역사·동향을 상세히 소개한 점도 눈에 띈다.
이처럼 이 책은 인류의 아디이어가 형성된 현장으로 우리는 안내함으로써 세계를 열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광대한 시야를 제공한다. 그리고 우리의 문명이 어떻게 시작됐고 어떤 과정을 밟아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해 더 깊은 통찰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김종윤기자@전자신문, jy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