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GSM 방식 단말기 개발
리튬폴리머전지를 세계 최초로 상업화 했다는 프리미엄은 브이케이를 코스닥에 등록시키고 촉망 받는 벤처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거기가 시작이었다. 생산기술을 고도화하고 품질관리 및 원가경쟁력을 높여 시장을 장악해야 하는 과제가 던져졌다.
시장환경은 브이케이가 생각하는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연이어 쏟아지는 중국산 전지의 덤핑공세는 리튬계 전지의 종주국인 일본의 대기업들을 잇따라 문닫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브이케이가 버티기는 역부족이었다. 회사의 주력사업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창업초기 20달러가 넘었던 2차전지의 시장가격은 중국업체의 공세로 2달러 까지 폭락했고 일본은 그 동안 벌어들인 초기 축적된 자금을 가지고 버티면서 경쟁대열에 동참했다.
우리의 납품처였던 삼성전자가 또다시 30% 정도의 가격인하를 요구하는 시점에서 우리의 규모와 경쟁력으로 전지산업계에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방법은 2가지였다. 시장을 특화시켜 전지사업을 지속하는 것과 유관산업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시너지를 높이면서 위기를 돌파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분야는 당연히 5년 동안 납품하면서 어깨너머로 지켜본 휴대폰 사업. 그러나 이 길은 브이케이가 걸어보지 못한 전혀 다른 길이었다. 부품소재산업과는 달리 브랜드와 소비자 관리라고 하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경쟁이 필요했다. 연구개발인력을 좀 모으면 단말기를 개발하는 것은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어떤 의미로는 전기화학 분야보다 쉬운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휴대폰을 개발, 생산하는 것이 휴대폰 사업은 아니었다. 그것만으로 휴대폰 사업을 할 수 있다면 아마 휴대폰 사업은 가장 쉬운 사업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말기 사업은 전혀 다른 것이라고 판단됐다.
만드는 사업이 아니라 파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성능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과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주며 파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인 것이다. 결국 최종소비자에게 이르는 유통경로를 확보하고 광고선전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높여내고 최종소비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신경 써야 하는 일이었다.
전지업체로서의 브이케이는 그저 큰 소비자인 몇몇 기업을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되었지만 휴대폰 사업자는 수백만 명을 상대하는 전혀 다른 길이었다. 브이케이 내부에서는 적당한 사업규모가 되는 액세서리를 생산, 대기업 납품을 지속하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그러나 브이케이가 처음 전지사업에 뛰어들 때의 포부는 적당한 부품업을 하면서 중소기업으로 머물며 적당히 먹고 살자는 생각과는 거리가 멀었다.
차라리 전지 셀도 만들지 않고 전지팩 조립이나 하고 적당히 버티면 얼마든지 사업을 영위할 수도 있었다. 어찌됐든 기간산업에 해당하는 제조업을 일궈 글로벌 경쟁에 뛰어들겠다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경영목표였다. 전지사업 후속으로 그러한 포부를 실현할 만한 사업분야는 휴대폰 개발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휴대폰 사업은 브이케이가 이미 확보하고 있는 전지 기술의 명맥을 이어줄 유효한 수단이기도 했다.
우리가 만든 전지를 자체 휴대폰에 장착해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한다면 기존의 전지사업을 지속적으로 영위하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국은 CDMA기술의 종주국이었고 여기저기 CDMA기술자들은 넘쳐나고 있었다. 이미 중견업체만 해도 굉장히 많은 수가 시장에 참여하고 있었다. 브이케이 특유의 철학은 여기서도 발휘됐다.
다른 한국 기업들이 하고 있는 시장에 뛰어들어 밥그릇싸움을 할 것이 아니라, 글로벌 경쟁을 통해 한국 휴대 단말기 업계의 시장 자체를 키울 수 있는 GSM 방식의 단말기를 만들기로 했다. 당시 대부분의 세계 시장은 GSM 방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지만 국내엔 삼성과 맥슨만이 GSM 단말기를 제조, 판매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국내에 GSM 단말기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다니던 중 벨웨이브라는 업체를 알게 됐다. 단말기에 대해 기술 축적이 매우 미흡한 상황이었으므로 일단 벨웨이브의 GSM 단말기를 도입해 시장 진입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새로운 산업에 진입하는 만큼 수많은 난관이 있었다. 기술적인 문제를 비롯 여러 환경 요인들로 인해 예정된 일정보다 5∼6개월 가량 제품의 준비가 늦어졌다. 생산과 판매를 위한 사전 작업도 지연됐다.
그러나 브이케이는 2001년 7월부터 9월까지 2달 동안 공장을 짓고 생산라인을 완성, 업계를 놀라게 했다. 2001년 12월 마침내 브이케이의 첫 휴대폰인 ‘VG100’을 출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boss@vkcorp.co.kr
사진: 브이케이가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 휴대폰 업체로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이 됐던 평택 전지연구소. 벤처기업인 브이케이의 한 직원이 전지연구소에서 리튬폴리머전지 개발을 위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