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가 10년 주기로 새로운 기술이 도입된다면 휴대폰은 대략 3년 주기로 새로운 기술이 도입된다. 그만큼 기술진화 속도가 빠르다는 얘기다. 따라서 휴대폰 업종은 필수적으로 선행기술 연구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브이케이가 GSM폰 사업을 시작한 이후 1년이 지나 컬러 GSM 휴대폰이 나왔고, 다시 1년 후에는 카메라를 장착한 컬러 GPRS 휴대폰이 선보였다. 다른 몇몇 회사들이 GPRS폰을 늦게 출시하는 바람에 시장을 잃고 영업 실적이 추락한 반면, 브이케이는 비교적 일찍 GPRS폰을 출시해 성장성을 유지했다.
기반 기술의 경우 GSM 시스템에서 GPRS 시스템으로 전환된지 3년 만에 통신 사업자들은 이제 3세대 통신 방식인 WCDMA 기술 도입에 여념이 없다. 브이케이가 CDMA 기술진 확보에 나선 것은 바로 이러한 3G 핵심기술이 시분할 전송방식(TDMA-GSM)보다는 코드분할 전송방식(CDMA)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브이케이는 곧 닥쳐올 CDMA 기반의 3G 기술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수 정예의 연구원들로 CDMA 연구소를 만들고 지속적으로 퀄컴 칩을 중심으로 CDMA 기술을 연구했다. 구체적인 상품화 계획 없이 계속 내부 연구만 진행하자 연구원들은 동요했다. 도대체 CDMA 폰을 만들 생각이 있느냐, 혹은 매일 연습만 하라는 거냐며 따지는 상황도 여러 차례 연출됐다.
그러나 회사 경영진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CDMA 기술을 반드시 확보해야 하고, 언젠가는 유용하게 활용할 날이 올 것이란 게 내 생각이었다. 사실 어떤 제품을 잘 만들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을 잘 만들어 파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CDMA 폰을 만들어 팔려면 우선 퀄컴과 수백만달러에 달하는 라이선스 계약을 해야 하고 생산 라인도 확보해야 한다.
더 큰 어려움은 이미 포화된 시장에 새로운 브랜드를 앞세워 마케팅도 해야 하고 사업자들과의 관계도 구축해야 한다. 더구나 CDMA 폰의 경우 수출시장보다는 국내 내수시장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내수 시장은 6년 가까이 신규 브랜드가 거의 나오지 못할 정도로 기존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이다.
그렇다고 기존 회사들을 대상으로 ODM에 나설 수는 없었다. 그것은 브이케이가 항상 마지막으로 간직하고 있는 사업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경쟁사들은 S사 L사·M사 등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거대 공룡기업이었고, 오픈시장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대부분 SK텔레콤이나 KTF·LG텔레콤 같은 사업자에게 납품할 수밖에 없는 특수한 시장 구조도 도전을 어렵게 만들었다.
브이케이가 미치지 않고서는 이 같은 시장에 뛰어든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1년 7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CDMA 연구소는 이미 한두 모델을 내부에서 만들 충분한 준비가 갖춰졌다. 하지만 시장 진출은 무리였다. 이때 번호이동성 제도가 시행되면서 호기가 찾아왔다. 사업자들은 저마다 자기의 고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좋은 단말기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SK텔레콤에 1만개만 만들어 팔아보고 다음 일을 결정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일사천리로 일이 추진됐다. 전면부가 아니라 후면에만 브이케이 상표를 표기하라는 사업자의 요구에 약간의 실랑이를 했지만, 나머지는 아무것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기술은 이미 확보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브이케이의 첫번째 CDMA 모델인 VK100은 이렇게 탄생했다.
사업자 망연동 테스트를 최단 시간에 통과했음에도 불구하고 SK텔레콤 내부서는 반신반의하는 빛이 역력했다. 예상과는 달리 VK100은 인기리에 팔려나갔다. 추가 물량 요구가 떨어졌음은 물론이다. 1만개만 팔아보자던 사업이 4만개 정도로 늘어났다. 월 4만개는 국내 시장에 안착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곧이어 100만화소 카메라가 장착된 VK200C를 내놓았다.
VK200C는 정통부가 3년간 출시한 휴대폰 모델 전부에 대해 실시한 SAR테스트에서 유해전자파가 가장 적게 나오는 제품으로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한 휴대폰 전문 사이트에서도 4주 연속 인기 모델 1위를 차지,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도 했다. 국내 내수 모델을 생산 판매하면서 비로소 브이케이는 휴대폰을 만드는 회사라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줄 수 있었다. 나아가 당초 취지대로 3G기술을 위해 필수적인 CDMA 기술을 축적할 수 있게 됐다.
브이케이는 연구진과 직원들이 한 맘으로 똘똘 뭉쳐 일궈낸 회사다. 번호이동성 제도 같은 호기도 찾아왔지만 결국은 밤을 지새면서 노력한 직원들의 노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이 같은 노력들이 자신감을 갖게 만들었다. 이제는 이 같은 노력을 3G폰에 집중,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 본격적으로 나설 때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