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 엔터기술 사장 (2) 현장에서 배운 경영학
일에 매진하는 모습이 좋게 보였던 탓인 지 주변에서 자기 사업을 운영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이어졌다. 중소기업을 나와 딱히 이렇다 할 직업이 없었던 차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브랜드, 사업모델, 유통 등 다양한 현장 체험이 시작됐다.
매형의 도움을 받아 처음 시작한 사업은 가구 대리점이었다. 80년 대 말 인테리어용 소형 가구를 취급하는 대리점은 꽤나 인기 있는 아이템 중 하나였다. 그러나 내 브랜드가 아닌 남의 브랜드를 가져다 판매하는 대리점이라는 사업 형태에 만족할 수 없었다. 꽤 안정적인 매출이 발생했지만 3개월 만에 접기로 결심했다. 대신 권리금까지 받아 통째로 대리점을 넘기는 방식으로 손해 없이 깨끗하게 사업을 정리했다. 그리고 내가 만든 제품, 내 브랜드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도 깨우쳤다. 지금의 엔터기술 제품이 ‘리드싱어’, ‘매직씽’이라는 자사 브랜드로 수출돼 세계 시장에서 당당히 인정 받고 경쟁할 수 있게 만든 소중한 경험이었던 셈이다.
가구 대리점을 접고 청과물 도매상도 운영했다. 그 역시 내 스타일과는 달랐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하루하루 수입은 꽤 있었으나 언제나 신선함을 유지해야 하는 청과물이라는 물류 특성상 그때 그때 소진하지 않으면 결국 실제적인 마진이 적었다는 것이다. ‘물건은 지속성을 지녀야 한다’고 깨달았다. 당장 얼마의 매출을 올렸냐는 것 보다는 실제 수익성과 그것이 지속 유지 되도록 하는 것이 사업에 꼭 필요한 요소임을 알게 됐다.
현재의 노래반주기 사업모델은 이러한 점들을 적극 반영했다. 노래반주기는 하드웨어 판매를 통한 당장의 수익성 보다는 지속적으로 발생할 미디칩을 통한 수익성이 높은 것도 이 전의 사업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하드웨어를 많이 판매하면 할수록 소프트웨어를 통한 매출과 수익성이 높아지는 사업모델을 만들었다.
지금은 마이크 하나 들고 세계를 다니지만 한 때는 봉고차 가득 봉재 인형을 싣고 전국을 누리던 때도 있었다. 서울 시내 유명 봉재 공장을 돌며 도매로 물건을 받아 며칠 동안 전국 각지를 돌며 소매상에 인형을 공급하는 일이었다. 한 차 가득 실었던 물건을 소진하고 나면 원가를 제하고 20여만원의 마진이 쥐어졌다. 유통이나 판로 개척 방법을 배우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됐다. 그러나 오랫동안 영위할 만한 사업은 아니라고 여겼다.
돌이켜 보면 다양한 사업에 도전하고 과감히 접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결단을 내릴 때 마다 확신을 잊지 않았다. 열정과 의지, 그리고 꿈을 담지 않는 일은 미래를 바칠만한 일이 아니면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몇 년간 수많은 업종을 체험한 뒤 의미 있는 또 한번의 사회 경험을 접했다. 재무 회계를 실제 익힐 수 있는 회계 사무실에 근무 한 것이다. 전공도 살리고 그 동안 공부했던 회계이론도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그러나 이론과 실무는 달랐고 처음은 좌충우돌이었다. 이론을 더 익히기 위해 독서실을 잡아 공부를 했고 실무 파악을 위해 남보다 몇 배는 노력했다. 그리고 6개월 후 사무실에서 그 누구보다 업무가 향상될 수 있었다. 그렇게 그곳에서 3년 넘게 근무하며 각종 세무 시스템과 다양한 기업의 재무상황을 파악하는 동안 많은 지인들도 만났다. 자본가의 세계도 느꼈고 인간관계의 중요함도 깨달았다.
엔터기술이 어려웠던 시절 도움을 주셨던 지인들도 이 시절 연을 맺게 된 분이 많았다. 또 그때 익혔던 재무 회계 실무는 지금 사업을 영위하는 데 값진 자산이 되고 있다.
leeenter@enter-tech.com
사진: 지난 2002년 여름 경기도 부천 오정동 엔터기술 연구소에서 필자(왼쪽 첫번째)와 연구원들의 제품개발 논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