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이경호 엔터기술 사장(5)

(5) 보급형 ‘리드싱어’ 개발 

작년 10월 우리 회사는 미국 진출 5년 만에 쾌거를 올렸다. 세계 최대 전자제품 유통망인 ‘베스트바이’에서 우리의 노래반주기 ‘리드싱어’가 판매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의 중소기업 제품이 베스트바이에, 그것도 자사 브랜드로 입성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제품의 품질을 세계적으로 검증 받은 것이며 무엇보다 가정에서 즐기는 엔터테인먼트 기기로 제품의 시장성을 인정 받았다는 점에 더욱 고무됐다. 벼룩시장에서 노래하며 제품을 팔았던 때를 생각하면 그 감회를 말로 할 수 없다.

2000년 미국 첫 진출 당시 현지 판로 개척은 현지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딜러에게 맡겼다. 그러나 기다리는 주문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알고 보니 이들은 한국인을 상대로 그것도 전단지 영업을 하고 있었다. 당장 이들과 판매 계약을 중지했다. 노래반주기의 실 구매자는 가정에서 파티와 가족 문화를 즐기는 현지 미국인들이 돼야 했으며 제품 특성상 ‘보여주는 마케팅’이 되어야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마케팅 핵심을 잘 못 짚고 있었다.

그 길로 무작정 직원 한 명과 미국으로 건너갔다. 현지인을 상대로 검증도 안 된 제품을 들고 판로를 개척한다는 것이 쉬울 리 만무했다. 그래서 미국인들이 직접 접할 수 있는 마케팅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비용이 문제였다. 그래서 물색한 것이 애너하임 근교 벼룩시장이었다. 구석진 곳에 자릿세 3000달러를 주고 좌판 하나를 차지했다. 그리고 제품을 설치해 노래하며 미국 관광객들, 소상인들에게 제품을 선보였다. 나중에는 현지에서 팝송 꽤나 하는 아르바이트생을 채용해 노래를 들려주곤 했다. 보여주고 들려주고 직접 접해볼 수 있는 일대일 마케팅이 시작됐다.

그렇게 몇 달, 처음에 무관심했던 상인들의 발길이 점점 잦아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플로리다에서 온 어느 바이어는 자기 고향에 가서 백개를 한 번 팔아 보겠다는 제안도 있었다. 이렇게 딜러가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딜러들은 LA, 뉴욕, 덴버 등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회사 노래반주기는 벼룩시장 내 매출 1위에 오를 만큼 인기 상품이 됐다. 벼룩시장 상인 회장의 배려로 가장 좋은 좌판도 배정 받았다.

입 소문이 퍼져 미국 전역에서 고객이 몰려왔고 3000여개의 점 조직 판매처가 생겨나게 되었다. 300달러라는 비싼 가격이지만 출발이 좋았다. 이어 대형 유통망을 갖춘 체인 스토어에서도 소문을 듣고 주문이 들어왔다. 그러나 그들의 요구는 150달러 이하로 제품을 공급해 달라는 것이었다. 일본 바이어가 품질과 기술을 최우선하고 가격을 결정한다면, 미국의 바이어는 가격을 정하고 제품을 맞추는 형식의 판매전략을 채택하고 있었다. 그들은 고객의 요구에 맞는 저가 제품을 공급 받기 원했다. 그러나 이미 우리 제품은 시장 가격이 300달러로 형성돼 있었기 때문에 브랜드 가치를 손상시키며 가격을 내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보급가의 신규 브랜드가 필요했다. 이렇게 개발한 것이 마이크 한대 속에 들어가는 미디음악 곡 수와 기능을 줄인 제품 ‘리드싱어’였다. 가격도 바이어의 요구에 맞는 149 달러가 가능했다. 2000년 5억원에 불과하던 미국 시장 매출은 2003년 50억, 2004년 230여 억원이 됐다.

미국 가구 수는 어림잡아 8000만 가구. 이중 10%만 보급해도 800만 대의 제품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이 거대한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품의 핵심기술인 반도체집적(ASIC)기술의 미국 특허도 획득했다. 또 EMI, 워너뮤직, 유니버셜 등 유명 음반사들과 음악 콘텐츠 관련 저작권 문제도 해결했다. 기존 아날로그식의 노래반주기 시장은 물론 그 어떤 유사 제품이 시장에 진입한다고 하더라고 이들과 경쟁 할 수 있는 엔터기술만의 경쟁력을 확보해 놓은 것이다.

leeenter@enter-tech.com

사진:  2003년 4월, 필자(왼쪽서 세번째)와 러시아 현지 바이어, 해외영업 담당 직원들과 모스크바 광장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엔터기술은 3600곡 이상의 러시아 음악 미디 콘텐츠를 보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