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업체 CEO 내부 승진 문화 정착

 주요 외국계 컴퓨팅 업체가 최근 잇달아 최고경영자(CEO)를 내부 발탁 인사를 통해 선임하면서 외국계 기업에도 CEO 내부 승진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지사 형태로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들은 국내 기업과 달리 CEO의 선발 요건으로 영업력을 가장 중시해 내부보다는 외부에서 유능한 인재들을 선발해 회사의 능력을 배가시켰지만, 한국IBM·한국후지쯔·한국마이크로소프트 등 토착형 외국계 기업을 중심으로 최근 CEO 선발 요건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부 인재 중용=국내 진출 10여년을 넘긴 토착형 외국계 기업들은 단순한 영업 능력보다는 본사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고 한국 지사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관리형’ CEO를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외부 인사보다는 내부 사정을 잘 알면서 회사의 철저한 검증 과정을 거친 내부 인사가 관리형 CEO로 적격이라는 것이다.

 지난 5월 외국계 기업에 대리로 입사해 CEO까지 올라 화제가 된 유재성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사장은 “연구개발 분야를 제외하곤 안 거친 분야가 없다”며 “본사에서도 이 같은 이력을 높이 산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초 한국IBM의 수장을 맡은 이휘성 사장도 내부 발탁 인사를 통해 선발된 대표적인 인물이다. 한국IBM은 신재철 전임 사장의 공백을 최소화하고 헝클어진 조직 재정비를 위한 최적의 인물로 이 사장을 낙점했다.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직원들의 동요를 최소화할 수 있는 인사가 절실했다.

 한국후지쯔는 지난 4월 처음으로 각자대표제를 도입하면서 박형규 전무와 김병원 전무를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이들은 한국후지쯔에서만 25년 넘게 한솥밥을 먹으면서 호흡을 맞춰 왔다. 김병원 대표이사는 “불경기에 회사가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내부 사정에 훤한 CEO가 필요하다”며 “사업 부문과 기술·관리 부문을 나눠 회사의 능력을 배가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내부 발탁 확산=주요 외국계 업체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외국계 기업들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지난달 김일호 전 사장의 전격 사임으로 CEO를 물색중인 한국오라클에도 이 같은 변화가 감지된다. 당초 외부 인사를 영입하려던 방침을 바꿔 내부 임원들도 후보군에 포함시켰다.

 키스 버지 한국오라클 대표대행은 현재 공석인 한국오라클 사장 선임과 관련해 “현재 내외부에서 후보를 찾고 있다”며 “강력한 리더십과 국내 영업 경험, 조직관리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버지 대표대행은 한국오라클 사장 선발 권한을 쥐고 있다.

 현재 신임 CEO를 물색중인 BEA시스템즈코리아, 시트릭스시스템즈코리아 등 외국계 컴퓨팅 업체들도 외부와 내부 인사 모두를 놓고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찬 한국마이크소프트 이사는 “외국계 기업들이 과거에는 지사장을 외부에서 데려오는 것이 관례였지만, 최근에는 내부 승진 인사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며 “국내 진출 10년을 넘긴 외국계 업체들은 CEO 내부 발탁 인사가 정착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패거리 문화 차단해야=내부 승진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있다. 내부 승진이 고착될 경우 학연·지연 등에 따라 패거리식 줄서기 문화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몇몇 외국계 기업이 줄서기 문화로 홍역을 앓은 적이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내부 승진의 병폐를 줄일 수 있는 차단책을 마련해야 내부 발탁 인사가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익종기자@전자신문, ij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