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웰컴 투 동막골

인간의 삶 중에서 가장 극단적이며 가장 비극적인 형태가 전쟁이다. 어떤 목적에 의해서건 전쟁은 용납될 수 없다. ‘좋은 전쟁과 나쁜 전쟁’은 있을 수가 없으며 모든 전쟁은 집단적 광기를 발산하면서 무고한 사람들을 수없이 희생시킨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50년이 넘었지만 우리는 기껏해야 남침인가 북침인가라는 문제로 싸우고 있을 뿐이며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불러일으킨 민족적 수난을 정신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화적 승화는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웰컴 투 동막골’은 거기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다.

강원도 깊은 산골의 동막골. 바깥에서는 같은 민족을 서로 살육하는 무서운 전쟁이 터진 줄도 모르고, 외부세계와 고립된 채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40여 채의 마을. 이곳으로 불시착해 추락한 미군 조종사와, 인천 상륙작전으로 후퇴하다 낙오된 인민군 3명, 그리고 탈영한 국군 2명 등 모두 5명의 외지인들이 비슷한 시기에 찾아온다.

즉 외부와 단절된 폐쇄공간에서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진 적들이 마주친다는 설정은 ‘공동경비구역 JSA641’와 비슷하고, 너무나 평화로운 환경 때문에 군인들이 전쟁을 잊고 따뜻하게 소일하는 설정은 ‘지중해’와 비슷하지만, ‘웰컴 투 동막골’에는 고유의 향기와 기품과 유머가 있다.

대학로에서 성장해 충무로로 입성한 장진 사단의 결정적 작품 ‘묻지마 패밀리’에서, 단편 ‘내 나이키’로 데뷔한 박광현 감독은, 2002년 LG 아트센터에서 장진 각본, 연출로 공연되었던 ‘웰컴 투 동막골’을 자신만의 독특한 감성으로 완성시켰다.

8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되었고 1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마을을 깊은 산골에 세트로 지어, 영화 전편에 걸쳐 모습을 드러내는 수십 명의 배우들과 함께 찍어야 하는 대형 작품이었지만, 박광현 감독은 소중한 주제를 드러내는 서사의 힘 있는 전개와, 각 장면을 빛나게 감싸 안는 따뜻한 유머를 재치 있는 감각으로 만들어냈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가고 있는 한강 다리를 폭파한 죄책감으로 부대를 탈영한 국군 장교 표현철(신하균 분)과 위생병(서재경 분), 그리고 인민군 중대장 리수화(정재영 분), 40대의 하사관 장영희(임하룡 분), 열일곱 살 소년병 서태기(류덕환 분), 그리고 미군 조종사 스미스(스티브 태슐러 분) 등 동막골로 들어온 외지인 6명의 캐릭터는 현명하게 설정되어 있다.

국군과 인민군의 양축을 이루는 표현철과 리수화, 죄의식으로 고뇌하는 예민한 표현철과 리더로서의 자존심과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는 따뜻한 리수화의 캐릭터는 효과적으로 입체화되어 있으며, 국군, 인민군 내부 구성원간의 캐릭터의 차이도 섬세하게 드러나 있다.

그러나 전쟁이 무엇인지, 총이나 수류탄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동막골 사람들의 순박함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다면 이 영화의 긴장감이나 감동은 없었을 것이다. 있을 것 같지 않은 순수함, 현대인들이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혹은 잃어버렸던 그 순수함을 원형 그대로 복원시키기 위해서는, 현실세계에서 멀리 떨어지진 동막골의 모습부터 마을 사람들 개개인의 캐릭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조화롭게 이루어져야만 했다. 동막골을 대표하는 캐릭터는 머리에 꽃을 꽂은, 정신세계가 약간 특이한 여일(강혜정 분)이다. 그녀의 순진무구함은 폭력을 폭력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것이 지닌 독성 자체를 원천적으로 무효화시킨다.

서로의 가슴에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 전쟁 중인 적들끼리 만나, 갈등과 반목의 단계를 거쳐 신뢰와 화합으로 거듭 나는 과정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끌고 가는 때 묻지 않은 순진무구한 상상력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상황의 언밸런스에서 발현되는 기막힌 웃음의 포인트는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주제의 진지함과 소중함을 더욱 더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데 기여한다.

가브리엘 살바토레 감독의 ‘지중해’가 무정부주의적 감성으로 전쟁 자체를 무화시킨다면, ‘웰컴 투 동막골’은 반전 평화라는 소중한 메시지를 넘어서서 인류애와 희생이라는 숭고한 이념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데 성공한다. 마지막 희생에 이르는 과정이 감상적이고 진부하며 호흡이 늘어지는 약점은 있지만, 그러나 영화의 미덕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소소한 약점까지도 끌어안고 싶어진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