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기업]IT원로들에게 듣는다

[사람과 기업]IT원로들에게 듣는다

사실 그렇다. 미국 어느 시인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청춘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장미빛 뺨, 붉은 입술, 유연한 무릎’이 결코 청춘을 대변 할 수 없다. 그보다는 ‘늠름한 의지, 빼어난 상상력, 불타는 정열’이 청춘의 기준이 돼야 한다. 이럴 때 우리는 스무 살 청년이 아닌, 예순 살 어르신에게서도 청춘을 볼 수 있다.

벤처 기업에 도움을 주기 위해 지난 2000년 결성된 IT 컨설팅기업 ‘프리씨이오(free-ceos.com)’에는 이런 ‘청춘’ 들이 모여 있다. 이들 중에는 국내 기업 최초로 컴퓨터 도입을 기획, 거대한 통신망으로 발전시킨 사람’이 있는가 하면, 프로그래머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 딘 후 최고경영자에 오른 인물도 있다. 또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회장을 지낸 사람도 있으며, 굴지의 SI업체 최고경영자 출신도 여럿이다.

IT라는 말도 없던 지난 70년대부터 컴퓨터·통신 현장을 누비고 다녔던 이들은 이제 머리가 하얀 60, 70대가 됐지만 벤처기업을 도와주는 ‘구원투수’로 활약하며 여전히 ‘현역’임을 보여주고 있다. 매주 화요일 프리씨이오 사무실이 있는 서울시 도곡동에 모여 현안과 친목을 다지는 이들은 지난 30일에도 삼삼오오 모였다.

“사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IT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60∼70년대에는 EDPS라는 말이 사용됐고, 이어 C&C(컴퓨터&커뮤니케이션스)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러다 80년대 중반부터 IT라는 말이 나왔고 90년대 이후부터 유행했습니다”(김원국·전 한국썬 사장)

이들이 현역으로 일할 때와 지금의 IT 환경은 그야 말로 격세지감이다. “당시 현장에서 일할 때 생각만 했던 것들이 지금은 거의 다 이루어진 느낌입니다. 60∼70년대만 하더라도 8비트 컴퓨터 한대를 설치하는데도 엄청나게 힘들었거든요”(홍성원·전 시스코코리아 회장)

이들이 사회 생활을 막 시작할 때는 IT라는 말이 없었지만 원로에 해당하는 이들을 ‘IT 1세대’라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닐 듯 하다. 원로들은 벤처 이야기가 나오자 이내 충고를 쏟아냈다. “CEO가 모든 것을 다 혼자 하려고 합니다. 벤처가 성공하려면 기술, 마케팅 등 여러 요소가 필요한데 벤처 CEO가 원맨쇼를 하니 성공하기 힘듭니다” “우리 나라는 아직 벤처 생태계가 취약합니다. 경영, 기술, 투자가(VC)의 3박자가 맞아야 하는데 아직 이들간 유기적 관계가 부족합니다” “요즘 벤처 CEO들은 고집이 세서 충고를 잘 안 듣는 경향이 있습니다. 항상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한데 말이죠.” 하지만 원로들은 패기와 신기술로 무장한 벤처 CEO에게서 때로는 많은 것을 배운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이야기가 원천기술과 응용 기술로 옮겨가자 갑자기 토론의 장으로 변했다. “운용체계(OS)는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 유틸리티는 도전해볼 만 합니다” “원천 기술도 우리가 가야할 길이 있고 가지 말아야 할 길이 있다” “국내 기술로 개발한 OS인 ‘K-DOS’와 데이터베이스인 ‘바다’ 등이 모두 실패했다. 기술 개발때 시장성도 함께 봐야 한다”

다수의 원로들은 우리나라가 원천 기술보다는 응용기술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요즘 고대 소설을 집필중인 김영태(전 LG CNS 사장) 원로는 “K-DOS도 메모리 반도체나 휴대폰 처럼 줄기차게 밀고나갔으면 성공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한때 내로라 하는 IT기업의 CEO를 지내기도 한 이들은 CEO 덕목에 대해 “비전을 설계, 제시 한후 직원의 역량을 하나로 모아 목표를 기필코 이루어 내는 힘”이 중요하다는데 대부분 동의 했다.

원로들은 IT강국 코리아의 미래가 밝다는데도 의견을 같이 했다. 하지만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교육 체계 재편 등 사회 전반의 인프라가 향상되어야 합니다”(이장규·전 금성소프트웨어 사장) “10년전 내가 한국소프트웨어 산업협회 회장을 지낼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문제점이 돌고 도는 느낌이다. 이래서는 안된다. 현재 있는 IT인프라만으로도 제대로 활용하면 한국은 잘 먹고 살 수 있다”(김택호·전 현대정보기술 사장)

“우리가 가진 IT 분야의 강점을 극대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유병배·전 한국소프트웨어 지원센터 소장)

“우리나라는 뒷심이 부족하다. 상용화 전 마지막 1%가 아주 중요한데, 대부분 이정도면 되겠지 하고 안주한다. 이걸 고쳐야 한다”(홍성원)

경험만큼 좋은 교과서는 없다. 과거의 사례에서 배울 수 없는 국가나 기업은 결코 발전할 수 없다. 사회에 어르신이 없다고 개탄하는 요즘, ‘IT 어르신’을 가질 만큼 역사가 쌓여가고 있는 ‘IT 코리아’가 이들 어르신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방은주기자@전자신문, ejbang@

사진: IT 1세대라 할 수 있는 원로들이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프리씨이오 사무실에 모였다. 앞줄 왼쪽부터 오해진(전 LG-EDS 사장), 김원국(전 한국썬 사장), 윤종수,(변호사·프심위 위원), 김택호(전 현대정보기술 사장), 김영태(전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회장), 유병배(전 한국소프트웨어 지원센터 소장). 뒷줄 왼쪽부터 송병남(전 기아정보시스템 사장), 이경호(전 한국후지쯔 사장), 홍성원(전 시스코코리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