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를 소재로 한 ‘너는 내 운명’은, 멋부리지 않고, 사랑이라는 실체에 대해 진솔하게 접근해 들어간다. 실버 세대의 새로운 사랑을 다큐멘터리적 기법으로 접근한 ‘죽어도 좋아’의 박진표 감독은 이번에도 현실에 포커스를 맞추고 극단적 상황에 내몰린 남녀를 통해 사랑에 대해 질문한다. 통속적이라고? 그래, 통속적이 아닌 사랑 있으면 어디 한 번 나와보라고 그래, 나는 이렇게 이 영화를 변명하고 싶다.
농촌의 다방 종업원 전은하(전도연 분)에게 시골 노총각 김석중(황정민 분)은 넋을 잃는다. 영화는 남녀의 사랑이야기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중심축은 여자가 아니라 노총각 김석중이다. 그것은 도시의 사창가에서 일하다가 시골 다방으로 온 전은하의 전력이나 그녀가 결국 AIDS에 걸린 게 알려지고, 의도적으로 사회에 복수하기 위해 남성들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혐의로 수감되기 때문에, 관객들이 여주인공에게 정서적 동일화를 일으키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본은 철저하게 순정 하나로 AIDS에 걸렸지만 그녀와의 사랑을 피하지 않겠다는 순정파 남자 김석중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이것은 효과적인 전략이다. 전반부에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나 밀고 당기며 사랑을 시작하는 장면은 소재의 무거움과 칙칙함에서 벗어나 대중적 재미를 주는 데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후반부, AIDS에 걸린 사실이 알려진 후부터 영화의 분위기는 뒤바뀐다. 마지막 결말까지 후반부의 흐름이 지나치게 길고 단조롭다.
그러나 황정민 전도연 조합은 예상보다 훨씬 파괴력이 높다. 역시 전도연은 좋은 배우고, 황정민은 기대치를 훨씬 뛰어넘는다. 젖소를 기르는 36살 시골 노총각이 도시에서 갓 내려온 다방 아가씨를 보고 순정에 불타는 전반부도 좋지만, 그녀를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는 후반부의 눈물겨운 투쟁도 멋지다. 나는, ‘외출’ 같은 감정의 사치가 넘쳐나는 영화보다 이런 영화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박진표 감독은 통속적 소재를 통속적으로 이용하지는 않는다. 대중영화를 만들고는 있지만 그가 다큐멘터리에서 쌓은 내공은, 현실의 추악한 뒷면까지 차갑게 바라보는 이성적 힘을 길러주었다. 폭넓은 시선으로 남녀 주인공을 둘러싼 시골 소도시의 인심의 변화, 가족관계의 변화까지 담아내는 그의 연출에는 진정성이 있다. 이 진정성이 이 영화를 단지 통속적 소재의 통속적 드러냄에만 머물게 하지 않는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